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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5일 금요일

풍토기 風土記 (천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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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토기 風土記 (천줄읽기)
지은이 미상 / 옮긴이 강용자
분야 : 일본 역사
출간일 : 2012년 9월 21일
ISBN : 978-89-6680-538-9 02910
12000원 / A5 제본 / 203쪽
약 35% 발췌


☑ 책 소개

일본 최초의 지방 지리서다. 단순한 지지라기보다는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의 생활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 또한 실로 다채롭다. 즉, 당시의 지리서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 외에 풍속서, 설화의 집합체로서 고대인들의 사상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을 연구하는데 기초되는 문헌의 하나로 오늘날 동시대에 생긴 ≪고지키≫와 나란히 고전으로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은 신라, 백제 등 한국 관련 사항들이 산적해 있음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본으로 도래한 우리 옛 선조들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는 만큼 우리들에게도 필독서가 될 것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일본사에서 원시부터 794년 헤이안경(平安京, 현재의 교토) 천도까지의 상대 시대는 다시 아스카(飛鳥) 일대에 도읍이 있었던 야마토(大和) 시대와 헤이조경(平城京, 지금의 나라)로 천도한 710년 이후의 나라(奈良)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야마토 시대 이전에는 오랜 전승 시대였으나 4세기경 백제 왕인(王仁) 박사에 의한 ≪논어≫와 ≪천자문≫의 전래로 본격적인 기록문학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6세기 말 33대 스이코(推古)천황 때의 섭정 쇼토쿠태자(聖德太子, 574∼622)는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제정하고, 607년에는 오노노이모코(小野妹子)를 필두로 한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해서 대륙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을 꾀하여 중앙집권 국가 건설을 지향한다. 한편 고구려, 신라, 백제로부터 건너온 도래인들도 아스카의 호류지(法隆寺)를 중심으로 일본 고대 문화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야마토 조정은 다이카개신(大化改新, 645)과 임신란(壬申亂, 672)을 거치면서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제에 의한 율령국가로 발전해 간다. 특히 임신란에서 승리한 40대 텐무(天武)천황 은 율령을 정비하고 신라와 수십 차례의 교류를 발판으로 해서 국사 편찬에 착수한다. 이윽고 701년에는 다이호율령(大寶律令)이 제정되어 명실상부한 고대율령국가의 건설을 완성하게 된다. 헤이조경으로 천도하여 헤이안경으로 천도할 때까지 80여 년간의 나라 시대에 많은 유학생과 유학승들이 견당사(遣唐使)로 당나라에 건너가 대륙의 선진 문화를 익혀온다. 또 이 시기는 한반도의 삼국통일 후로, 신라와는 관계가 나빠지나 발해와는 727년부터 약 200년 동안 30여 회 국사를 교환하며 활발한 무역을 이룬다. 그리하여 쇼무(聖武)천황의 텐표(天平, 729∼749) 연간에는 당나라와 서역 등의 영향을 받은 텐표 문화가 번창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문학 분야에서는 역사서로서 ≪고지키(古事記:고사기)≫와 ≪니혼쇼키(日本書紀:일본서기)≫, 지리서로서는 ≪후도키(風土記)≫(본서에서는 이하 풍토기라고 한다)가 편찬되어 중앙집권의 결정체를 이룬다.

≪풍토기≫란 ‘기후와 지역에 대한 기록’으로 한마디로 지지(地誌), 곧 일본 최초의 지방 지리서이다. 일본 고대의 주석가는 “사물을 양육하여 공(功)을 세우는 것을 풍(風)이라 하고, 앉아서 만물을 탄생시키는 것을 (土)라 한다”(≪료슈게(令集解)≫)고 말한다. ≪풍토기≫는 개인적인 문학적 술작이 아니라 713년 5월 2일의 ≪풍토기≫ 찬진(撰進) 명령에 의해서 편찬된다. 겐메이(元明)여제의 명령에 의한 찬진의 실제 책임자는 나라 천도를 유도한 후지와라노후히토(藤原不比等)와 아와타노마히토(粟田眞人)라고 추정된다. 그러면서도 이 관명을 실은 ≪쇼쿠니혼기(續日本紀:속일본기)≫ 기사에서는 정작 서명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이것은 ≪쇼쿠니혼기≫의 오자와 탈자 혹은 착란(錯亂)일 수도 있고, 한편 이 ‘사적’이 끝내는 공식적인 서명을 획득하지 못한 미완성작이었다는 추정도 나온다.

첫 시도와는 달리 어느새 지방 문서로 매장되어 있던 ≪풍토기≫가 다시 중앙 정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다이고(醍醐)천황 914년 4월 칙령에 응해서 제출된 미요시노기요유키(三善淸行)의 <의견봉사십이조(意見封事十二條)>(≪혼초몬스이(本朝文粹)≫)에 의해서이다. 그 뒤 925년 후지와라노다다히라(藤原忠平)는 5기 7도 지방에 “급히 풍토기를 작성하여 헌상하라!”는 명을 내리고 여러 지방에 있는 풍토기 문이라고 보이는 것을 지방청이나 군위 등에서 찾아내고 그래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옛날 노인에게 물어서라도 속히 헌상하라고 지시한다(≪朝野群載≫ 所收).

이런 상황은 당시 중앙에서도 풍토기가 어떠한 것인지 몰랐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아가 시대적으로도 그 뒤 오닌란(應仁亂) 등의 전국적인 내란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흐름 속에서 거의 소멸해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본래 713년 ≪풍토기≫ 찬집 명령 당시의 지역 수는 모두 62개 지방 3도(島)이다. 한 지역당 한 권으로 쳐도 완성하면 60권이 넘는 대집성이다.

그러나 ≪풍토기≫ 중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히타치(常陸)·이즈모(出雲)·하리마(播磨)·분고(豊後)·히젠(肥前)의 5개 지방으로 이 중에서 ≪이즈모 지방 풍토기≫만이 완본으로, 다른 것은 생략본이거나 파손본이다. 흔히 ≪풍토기≫가 만들어진 시기와 특색에 따라 여러 지방의 특유한 소박함을 잃지 않고 남아 있는 <와도(和銅)풍토기>(히타치와 하리마)와 실용주의적인 <텐표(天平)풍토기>(이즈모, 733년), 거의 동 시기에 만들어진 큐슈(九州)제풍토기(분고와 히젠만 현존)로 나누어 부른다.


☑ 책 속으로

童女胸鉏所取而 大魚之支太衝別而 波多須々支穂振別而 三身之綱打挂而 霜黒葛闇々耶々爾 河船之毛々曾々呂々爾 国々來々引來縫国

童女の胸鉏取らして、大魚のきだ衝き別けて、はたすすき穂振り別けて、三身の綱うち掛けて、霜黒葛くるやくるやに、河船のもそろもそろに、国來々々と引き來縫へる国

처녀의 가슴과 같이 넓은 커다란 호미를 손에 들고 생선의 내장을 발라내듯이 괭이로 캐내서 참억새의 이삭을 나누듯이 산산이 나눠 굵은 새끼줄을 걸쳐서 서리 맞아 마른 검정 풀을 당겨오듯이 배를 끌어 올려 슬슬 나아가며, “나라여 와라, 나라여 와라”고 끌어당겨 이은 나라


☑ 옮긴이 소개

강용자(姜容慈)

일본 국학원(國學院)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엽집(萬葉集)을 텍스트로 해 한일 간 고대 문화의 관계를 전공했으며 부산대학교, 동아대학교, 부경대학교, 경남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해양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서대학교를 거쳐 현재 창원대학교, 동의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번역서로 ≪인터넷 시대의 종교≫(도서출판 역락, 2005), ≪女帝의 사랑−詩人 柿本人麻呂≫(제이플러스, 2003), ≪일본 풍토기≫(동아대학교 출판부, 1999), ≪일본의 종교≫(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고사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양생훈≫(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법세 이야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萬葉 祈禱文化考>, <‘萬葉集’에서 보는 他界觀>, <萬葉 ‘夢’考>, <萬葉 神觀考>, <萬葉 天皇考>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Ⅰ 히타치 지방(常陸國) 풍토기

Ⅱ 이즈모 지방(出雲國) 풍토기

Ⅲ 하리마 지방(播磨國) 풍토기

Ⅳ 분고 지방(豊後國) 풍토기

Ⅴ 히젠 지방(肥前國) 풍토기

Ⅵ 풍토기 이쓰분(逸文)

옮긴이에 대해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속일본기 1(續日本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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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일본기 1(續日本紀 1)
스가노노 마미치(菅野眞道) 외 지음 / 이근우 옮김
분야 : 일본 역사
출간일 : 2012년 9월 1일
ISBN : 978-89-6680-413-9 92910
35000원 /  A5 제본  / 756쪽


☑ 책 소개

≪속일본기≫는 문무천황(文武天皇)의 즉위부터 환무천황(桓武天皇)의 연력(延曆) 10년까지 9대, 95년간(697∼791)을 기록한 40권 분량의 관찬(官撰) 사서(史書)다. 그 속에는 내량시대(奈良時代, 710∼784) 전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 동시대에 기록한 사료로서 상세하게 일본사를 복원할 수 있다.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자료들도 들어 있어 우리의 고대사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 출판사 책 소개

우리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
≪속일본기≫는 697년에서 791년까지 95년간의 역사를 40권의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2년간의 역사를 1권 가까운 분량으로 서술한 셈이다. 이 사서는 797년에 완성된 동시대의 사료다. 그래서 비교적 상세하게 8세기의 일본사를 복원할 수 있다. ≪속일본기≫에는 신라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신이나 발해가 일본에 파견한 사신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 대한 기술이 적고, ≪속일본기≫의 신라 사신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속일본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고대사 사료를 보충할 수 있는 사서다.
≪삼국사기≫를 통해 신라사라는 숲을 볼 수 있는 정도라면, ≪속일본기≫를 통해서 일본 고대사라는 숲 속의 나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지역적인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웃 나라의 역사를 읽으면서 거꾸로 한국 고대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속일본기≫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율령체제에 바탕을 둔 고대국가의 성립
이 책은 ≪속일본기≫ 권1부터 권10까지, 일본 제42대 천황인 문무천황(文武天皇)의 즉위(697년)부터 원명(元明)·원정(元正)을 거쳐 제45대 성무천황(聖武天皇) 7년(730년)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문무천황은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율령(律令)으로 평가되는 대보율령(大寶律令)을 제정했다. 이와 함께 관사(官舍)의 지위, 봉호(封戶)와 음서(蔭敍)의 적용 등 행정 부문에서 새로운 율령을 적용하려 노력했다. 이 책에서는 이 외에도 종교 관계 기사, 자연현상에 관한 기사, 신라·발해·당 등과의 외교 관계 기사를 통해 일본 고대국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본 고대사 전공자에 의한 전문적 번역
≪속일본기≫를 번역한 역자 이근우는 일본 고대사료를 연구하고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는 학자다.
우리 학계는 ≪일본서기≫나 ≪속일본기≫와 같은 일본 고대 사료에 대한 학술적인 번역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일본서기≫의 한국 고대사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역시 일본 고대사 전공자에 의한 본격적인 번역은 없는 상태다. ≪속일본기≫의 출간으로 우리 학계의 학술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 책 속으로

1. 9쪽.
천황은 태어나면서부터 관대하고 인자하였으며, 화난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널리 경전과 사서를 섭렵하였으며, 특히 활쏘기에 능하였다. 고천원광야희천황 11년(697)에 황태자가 되었다.

2. 188쪽.
신사, 조(詔)를 내리기를, “제국(諸國)의 대세(大稅)를 3년 동안 진대[賑㒃]하는 것은 원래 백성의 궁핍을 불쌍히 여겨 구하기 위함이다. 지금 국군사(國郡司) 및 이장(里長) 등은 이 은혜로움을 이용하여 함부로 편법을 자행하고 있다. 정치를 해치고 백성을 좀먹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만약 자신이 윤택하고자 해서, 불법으로 이익을 취하는 자는 중죄로 논하라. 그 죄는 사면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3. 461~462쪽.
나의 황태상천황 앞에 공손히 나아가 엎드려 여쭙기를, ‘경들이 묻는 정사[政]에 대해서 이렇게 답할까요, 저렇게 답할까요’라고 하고, ‘이 사람을 이 관직에 임명할까요’라고 하면,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시고 대답해 명하시는 대로 이 세상[食國天下]의 정치를 행하고 받드는 사이에, 경직대부(京職大夫) 종3위 등원조신마려(藤原朝臣麻呂) 등이 도(圖)를 짊어진 거북 한 마리를 바친다고 아뢰니, 듣고 놀라고 이상스러웠으며, 직접 보니 기쁘고 즐겁도다. 이는 황공하옵게도 짐의 좋은 정치로 비롯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는 태상천황의 두텁고 넓은 덕을 입고, 높고 귀한 행동에 의해서 나타난 큰 상서로운 물건이라고 하는 명령을 모두 듣도록 하라고 명한다. 또한 이 큰 상서로운 물건은 하늘에 계시는 신과 땅에 계시는 신이 모두 가상히 여겨서 복을 내려주심으로써 나타난 귀한 상서로움이므로, 이 시대의 연호(年號)를 고쳐서 바꾼다. 이제 신귀(神龜) 6년을 고쳐서 천평(天平) 원년으로 하고, 천하에 대사(大赦)하고, 백관(百官) 주전(主典) 이상의 사람에게 모두 관위(冠位) 1계(階)를 올려주는 일을 시작으로, 한두 가지가 경사로운 명령을 베풀어 행하고자 내리는 천황의 명령을 모두 듣도록 하라.


☑ 지은이 소개

스가노노 마미치(菅野眞道) 외
791년 사서 편찬의 칙명을 받은 우대신(右大臣) 후지와라노쓰구타다(藤原繼繩)가 7년에 걸쳐서 광인천황대(光仁天皇代)에 정리된 사료에 첨삭을 가하고 그 후의 기사를 새로이 추가했다. 전체 40권의 정사는 두 차례로 나누어 헌상되었다. 후반부 20권은 후지와라노쓰구타다의 이름으로 796년에 헌상되었으며, 전반부 20권은 797년 봄에 당시 황태자학사였던 스가노노마미치가 헌상했다.
≪속일본기≫를 최종적으로 찬진(撰進)한 인물로 스가노노마미치·아키시노노야스히토(秋篠安人)·나카시나노코츠오(中科巨都雄)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반도계 씨족 출신이었다. 스가노노마미치는 환무천황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환무천황의 인척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속일본기≫의 편찬에 깊이 관여했다.


☑ 옮긴이 소개

이근우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거쳐 한국학대학원 사학과 석·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다시 일본 교토대학 일본사 교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경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이며, 부경대학교 박물관장·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을 거쳐, 대마도연구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관심 분야는 고대 한일 관계사, 한국 고대사, 일본 고대사이며, 현재는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속일본기(續日本紀)≫, ≪영의해(令義解)≫ 등 일본 고대의 사료를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고대왕국의 풍경≫(인물과 사상사, 2006), ≪전근대 한일 관계사≫(방송대 출판부, 2007), ≪전통사회의 이해≫(방송대 출판부, 2008), ≪부산과 대마도의 2000년≫(국학자료원, 2010) 등의 저서를 집필했고, ≪일본사상사≫, ≪주자학과 양명학≫, ≪일본서기 입문≫, ≪침묵의 종교 유교≫, ≪지의 윤리≫, ≪지의 현장≫,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등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대표 논문으로는 <桓武天皇의 母系는 武寧王의 後孫인가>(2002), <王仁의 千字文·論語 일본 전수설 재검토>(2004), <日本書紀에 보이는 五經博士와 吳音>(2010) 등이 있다.


☑ 목차

추천의 글

권 제1 정유년 8월부터 경자년 12월까지
권 제2 대보(大寶) 원년 정월부터 2년 12월까지
권 제3 대보(大寶) 2년 정월부터 경운(慶雲) 4년 6월까지
권 제4 경운(慶雲) 4년 7월부터 화동(和銅) 2년 12월까지
권 제5 화동(和銅) 3년 정월부터 화동 5년 12월까지
권 제6 화동(和銅) 6년 정월부터 영귀(靈龜) 원년 8월까지
권 제7 영귀(靈龜) 원년 9월부터 양로(養老) 원년 12월까지
권 제8 양로(養老) 2년 정월부터 5년 12월까지
권 제9 양로(養老) 6년 정월부터 신귀(神龜) 3년 12월까지
권 제10 신귀(神龜) 4년 정월부터 천평(天平) 2년 12월까지

원문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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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2년 9월 6일 목요일

속일본기 3(續日本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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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일본기 3(續日本紀 3)
스가노노 마미치(菅野眞道) 외 지음 /  이근우 옮김
분야 : 일본 역사
출간일 : 2012년 9월 5일
ISBN : 978-89-6680-507-5 92910
35,000원 / A5 제본 / 736쪽



☑ 책 소개

문무천황(文武天皇)의 즉위부터 시작하여 환무천황(桓武天皇)의 연력(延曆) 10년까지 9대, 95년간(697∼791)에 대하여 기록한 40권 분량의 관찬(官撰) 사서(史書)다. 그 속에는 내량시대(奈良時代, 710∼784) 전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 동시대에 기록한 사료로서 상세하게 일본사를 복원할 수 있다.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자료들도 들어 있어 우리의 고대사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 출판사 책 소개

우리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
≪속일본기≫는 697년에서 791년까지 95년간의 역사를 40권의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2년간의 역사를 1권 가까운 분량으로 서술한 셈이다. 이 사서는 797년에 완성된 동시대의 사료다. 그래서 비교적 상세하게 8세기의 일본사를 복원할 수 있다. ≪속일본기≫에는 신라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신이나 발해가 일본에 파견한 사신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 대한 기술이 적고, ≪속일본기≫의 신라 사신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속일본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고대사 사료를 보충할 수 있는 사서다.
≪삼국사기≫를 통해 신라사라는 숲을 볼 수 있는 정도라면, ≪속일본기≫를 통해서 일본 고대사라는 숲 속의 나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지역적인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웃 나라의 역사를 읽으면서 거꾸로 한국 고대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속일본기≫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어려운 현실과 정치 격변 시기의 기록
제21권부터 30권까지는 천평보자(天平寶字) 2년(758년) 8월부터 보귀(寶龜) 원년(770년) 9월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의 초기에는 여전히 천하태평을 꿈꾸며 천평(天平)이라는 연호에, 길조라고 여겼던 여러 가지 현상들을 덧붙여 사용했다[천평보자(天平寶字), 천평신호(天平神護)]. 이후에도 그러한 경향은 계속되었다[신호경운(神護景雲), 보귀(寶龜)]. 그러나 사람들이 자연 현상에 의지하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어려웠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적 사건은 순인천황(淳仁天皇)의 즉위, 등원중마려(藤原仲麻呂)의 난, 효겸(孝謙)의 중조(重祚), 도경(道鏡)이라는 승려의 집권, 광인(光仁)의 즉위를 들 수 있다.

일본 고대사 전공자에 의한 전문적 번역
≪속일본기≫를 번역한 역자 이근우는 일본 고대 사료를 연구하고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는 학자다.
우리 학계는 ≪일본서기≫나 ≪속일본기≫와 같은 일본 고대 사료에 대한 학술적인 번역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일본서기≫의 한국 고대사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역시 일본 고대사 전공자에 의한 본격적인 번역은 없는 상태다. ≪속일본기≫의 출간으로 우리 학계의 학술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 책 속으로

1.무신, 견발해사(遣渤海使) 소야조신전수(小野朝臣田守) 등이 당국(唐國)의 소식을 아뢰기를, “천보(天寶) 14년(755) 세차(歲次) 을미 11월 9일, 어사대부(御史大夫) 겸 범양절도사(范陽節度使) 안록산(安祿山)이 반역해서 병사를 동원해 난을 일으키고, 스스로 대연(大燕) 성무황제(聖武皇帝)라 칭했습니다. 범양(范陽)을 고쳐서 영무군(靈武郡)이라 하고, 그 집을 잠룡궁(潛龍宮)이라 하고, 연호를 성무(聖武)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 안경서(安卿緖)를 머무르게 해서 범양군(范陽郡)의 일을 맡게 하고, 스스로 정병(精兵) 20여만 기병을 이끌고 길을 열어 남쪽으로 갔습니다. …”

2.을사, 태사(太師) 등원혜미조신압승(藤原惠美朝臣押勝)의 역모가 폭로되었다. 고야천황(高野天皇)이 소납언(小納言) 산촌왕(山村王)을 보내 중궁원(中宮院)의 영(鈴)과 인(印)을 거두어들이게 했다. 압승(押勝)이 그것을 듣고 아들 훈유마려(訓儒麻呂) 등을 보내 기다려서 그것을 빼앗게 했다. 천황이 수도소위(授刀少尉) 판상예전마려(坂上苅田麻呂), 장조(將曹) 모록도족(牡鹿嶋足) 등을 보내 활을 쏘아 그를 죽였다.


3.“…적신(賊臣) 중마려(仲麻呂)는 외척의 가까운 신하로서, 선대[先朝]에 등용되었다. 위임하기로 정하고 다시 의심하지 않았다. 그 화역(禍逆)의 뜻을 속에 감추고 짐새[鴆]의 독과 같은 해악으로 천하에 물들게 하고 사람과 신의 마음을 범해서 노하게 하니, 어찌 그를 원망하는 기운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었겠는가. 다행히 신령이 나라를 보호하고 바람과 비가 군사를 도우니 10일이 되지 않아 모두 주륙할 수 있었다. 지금 근본적인 악을 이미 없애고 한결같이 선으로 돌아가게 해, 지나간 잘못을 씻고 만물과 함께 다시 새로워지고자 한다. 연호를 고쳐서 천평보자(天平寶字) 9년을 천평신호(天平神護) 원년으로 해야 할 것이다. …”


☑ 엮은이 소개

스가노노 마미치(菅野眞道) 외
791년 사서 편찬의 칙명을 받은 우대신(右大臣) 후지와라노쓰구타다(藤原繼繩)가 7년에 걸쳐서 광인천황대(光仁天皇代)에 정리된 사료에 첨삭을 가하고 그 후의 기사를 새로이 추가했다. 전체 40권의 정사는 두 차례로 나누어 헌상되었다. 후반부 20권은 후지와라노쓰구타다의 이름으로 796년에 헌상되었으며, 전반부 20권은 797년 봄에 당시 황태자학사였던 스가노노마미치가 헌상했다.
≪속일본기≫를 최종적으로 찬진(撰進)한 인물로 스가노노마미치·아키시노노야스히토(秋篠安人)·나카시나노코츠오(中科巨都雄)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반도계 씨족 출신이었다. 스가노노마미치는 환무천황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환무천황의 인척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속일본기≫의 편찬에 깊이 관여했다.


☑ 옮긴이 소개

이근우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거쳐 한국학대학원 사학과 석·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다시 일본 교토대학 일본사 교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경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이며, 부경대학교 박물관장·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을 거쳐, 대마도연구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관심 분야는 고대 한일 관계사, 한국 고대사, 일본 고대사이며, 현재는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속일본기(續日本紀)≫, ≪영의해(令義解)≫ 등 일본 고대의 사료를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고대왕국의 풍경≫(인물과 사상사, 2006), ≪전근대 한일 관계사≫(방송대 출판부, 2007), ≪전통사회의 이해≫(방송대 출판부, 2008), ≪부산과 대마도의 2000년≫(국학자료원, 2010) 등의 저서를 집필했고, ≪일본사상사≫, ≪주자학과 양명학≫, ≪일본서기 입문≫, ≪침묵의 종교 유교≫, ≪지의 윤리≫, ≪지의 현장≫,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등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대표 논문으로는 <桓武天皇의 母系는 武寧王의 後孫인가>(2002), <王仁의 千字文·論語 일본 전수설 재검토>(2004), <日本書紀에 보이는 五經博士와 吳音>(2010) 등이 있다.



☑ 목차

권 제21 천평보자(天平寶字) 2년 8월부터 12월까지 ··1
권 제22 천평보자(天平寶字) 3년 정월부터 4년 6월까지 ················51
권 제23 천평보자(天平寶字) 4년 7월부터 5년 12월까지 ···············103
권 제24 천평보자(天平寶字) 6년 정월부터 7년 12월까지 ···············145
권 제25 천평보자(天平寶字) 8년 정월부터 12월까지 ·191
권 제26 천평신호(天平神護) 원년 정월부터 12월까지 245
권 제27 천평신호(天平神護) 2년 정월부터 12월까지 ·291
권 제28 신호경운(神護景雲) 원년 정월부터 12월까지 337
권 제29 신호경운(神護景雲) 2년 정월부터 3년 6월까지 ···············377
권 제30 신호경운(神護景雲) 3년 7월부터 보귀(寶龜) 원년 9월까지 ··········441

원문 ······················499
부록 ······················665
찾아보기 ····················699

해설 ······················719
엮은이에 대해 ··················733
옮긴이에 대해 ··················734


2012년 7월 12일 목요일

속일본기 2(續日本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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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문무천황(文武天皇)의 즉위부터 시작하여 환무천황(桓武天皇)의 연력(延曆) 10년까지 9대, 95년간(697∼791)에 대하여 기록한 40권 분량의 관찬(官撰) 사서(史書)다. 그 속에는 내량시대(奈良時代, 710∼784) 전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 동시대에 기록한 사료로서 상세하게 일본사를 복원할 수 있다.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자료들도 들어 있어 우리의 고대사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 출판사 책 소개

우리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
≪속일본기≫는 697년에서 791년까지 95년간의 역사를 40권의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2년간의 역사를 1권 가까운 분량으로 서술한 셈이다. 이 사서는 797년에 완성된 동시대의 사료다. 그래서 비교적 상세하게 8세기의 일본사를 복원할 수 있다. ≪속일본기≫에는 신라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신이나 발해가 일본에 파견한 사신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 대한 기술이 적고, ≪속일본기≫의 신라 사신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속일본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고대사 사료를 보충할 수 있는 사서다.
≪삼국사기≫를 통해 신라사라는 숲을 볼 수 있는 정도라면, ≪속일본기≫를 통해서 일본 고대사라는 숲 속의 나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지역적인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웃 나라의 역사를 읽으면서 거꾸로 한국 고대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속일본기≫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천평이라는 연호로 대표되는 시기의 기록
제11권부터 20권까지는 천하태평의 소망을 담고 있는 천평이라는 연호가 사용된 시기다. 그러나 이 시기는 당시 위정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결코 천하가 태평하지 않았다. 지진·태풍·홍수·가뭄·전염병 같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고, 중앙 정계의 정쟁과 반란이 빈발한 시기였다. 이러한 재해와 혼란의 시기 정점에는 당시의 최고 권력자였던 성무(聖武)가 있었다. 그 주변에는 황족, 등원씨(藤原氏)로 대표되는 중앙 귀족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왕위 계승의 문제와 권력의 장악을 둘러싸고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었는가 하면, 정점에 위치한 성무도 결코 강력한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존재는 아니었다. 신하의 반란 때문에 여러 도성을 전전하기도 하고, 자신이 부처의 종이라고 자인하면서 부처 앞에 무릎을 꿇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일본 고대사 전공자에 의한 전문적 번역
≪속일본기≫를 번역한 역자 이근우는 일본 고대사료를 연구하고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는 학자다.
우리 학계는 ≪일본서기≫나 ≪속일본기≫와 같은 일본 고대 사료에 대한 학술적인 번역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일본서기≫의 한국 고대사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역시 일본 고대사 전공자에 의한 본격적인 번역은 없는 상태다. ≪속일본기≫의 출간으로 우리 학계의 학술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 책 속으로


1. 무술, 조하기를, “재변(災變)이 자주 나타나고, 질병[疫癘]이 끊이지 않으니 천하에 대사(大赦)한다. 천평(天平) 7년 윤11월 17일 동트기 이전의 대벽죄 이하는, 죄의 경중 없이 이미 발각되었거나 발각되지 않았거나, 이미 형이 결정되었거나 아직 결정되지 않았거나, 팔학(八虐)을 범했거나, 일반적인 사면의 예에 들지 않았던 자들을 모두 사면한다.


2. 계묘, 조하기를, “짐이 과박(寡薄)한데 삼가 보배로운 자리를 이어받으니, 항상 천지(天地)의 조화에 누를 끼치고 백성들의 희망을 어그러뜨릴까 두렵다. 헛되이 근심과 수고로움만 쌓이니 정사가 미흡한 것 같구나. 신(神)의 꾸지람을 듣는 것은 실로 짐으로 인한 것이다.


3.가을 7월 무신, 조하기를, “이제 알리노라. 요즘 왕들과 신하들 중에서 예를 잃고 반역하려는 자들이 있어서 계획하기를, 대궁(大宮)을 포위하려고 사병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거듭거듭 생각해 보아도 아무도 짐의 조정을 배반하고 그런 일을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법대로 다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같은 일을 여러 사람이 거듭 아뢰었지만, 문책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지은이 소개

스가노노 마미치(菅野眞道) 외
791년 사서 편찬의 칙명을 받은 우대신(右大臣) 후지와라노쓰구타다(藤原繼繩)가 7년에 걸쳐서 광인천황대(光仁天皇代)에 정리된 사료에 첨삭을 가하고 그 후의 기사를 새로이 추가했다. 전체 40권의 정사는 두 차례로 나누어 헌상되었다. 후반부 20권은 후지와라노쓰구타다의 이름으로 796년에 헌상되었으며, 전반부 20권은 797년 봄에 당시 황태자학사였던 스가노노마미치가 헌상했다.
≪속일본기≫를 최종적으로 찬진(撰進)한 인물로 스가노노마미치·아키시노노야스히토(秋篠安人)·나카시나노코츠오(中科巨都雄)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반도계 씨족 출신이었다. 스가노노마미치는 환무천황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환무천황의 인척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속일본기≫의 편찬에 깊이 관여했다.




☑ 옮긴이 소개


이근우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거쳐 한국학대학원 사학과 석·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다시 일본 교토대학 일본사 교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경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이며, 부경대학교 박물관장·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을 거쳐, 대마도연구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관심 분야는 고대 한일 관계사, 한국 고대사, 일본 고대사이며, 현재는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속일본기(續日本紀)≫, ≪영의해(令義解)≫ 등 일본 고대의 사료를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고대왕국의 풍경≫(인물과 사상사, 2006), ≪전근대 한일 관계사≫(방송대 출판부, 2007), ≪전통사회의 이해≫(방송대 출판부, 2008), ≪부산과 대마도의 2000년≫(국학자료원, 2010) 등의 저서를 집필했고, ≪일본사상사≫, ≪주자학과 양명학≫, ≪일본서기 입문≫, ≪침묵의 종교 유교≫, ≪지의 윤리≫, ≪지의 현장≫,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등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대표 논문으로는 <桓武天皇의 母系는 武寧王의 後孫인가>(2002), <王仁의 千字文·論語 일본 전수설 재검토>(2004), <日本書紀에 보이는 五經博士와 吳音>(2010) 등이 있다.




☑ 목차


권 제11 천평(天平) 3년 정월부터 6년 12월까지


권 제12 천평(天平) 7년 정월에서 9년 12월까지


권 제13 천평(天平) 10년 정월에서 천평 12년 12월까지


권 제14 천평(天平) 13년 정월부터 14년 12월까지


권 제15 천평(天平) 15년 정월부터 16년 12월까지


권 제16 천평(天平) 17년 정월부터 18년 12월까지


권 제17 천평(天平) 19년 정월에서 천평승보(天平勝寶) 원년 12월까지


권 제18 천평승보(天平勝寶) 2년 정월부터 4년 12월까지


권 제19 천평승보(天平勝寶) 5년 정월부터 8년 12월까지


권 제20 천평보자(天平寶字) 원년 정월부터 2년 7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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