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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백마의 기수(Der Schimmelre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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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백마의 기수(Der Schimmelreiter)
지은이 : 테오도어 슈토름(Theodor Storm)
옮긴이 : 오용록
분야 : 독일 소설
출간일 : 2014년 8월 14일
ISBN : 979-11-304-5792-5  03850 
가격 : 145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238쪽




☑ 책 소개

독일 작가 테오도어 슈토름의 작품이다. 슈토름이 죽던 해인 1888년에 나왔다.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다. 사물과 상징이 하나로 승화된 사실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이중액자소설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슈토름이 살았던 19세기 독일은 큰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비록 주권은 여전히 군주가 잡고 있었지만 18세기까지 유지되던 신분사회가 계급사회로 바뀌고 합리적 행정 체제가 뿌리내렸으며, 지금과 같은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헌법과 의회가 존재하던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는 도로·철도·운하 등의 확장 및 석탄·철의 생산과 소비 등이 두드러졌다. 슈토름의 ≪백마의 기수≫에서 중심 문제로 등장하는 제방 축조에서도 짚과 섶나무 대신 석층으로 호안 공사(護岸 工事)를 하고 증기를 이용한 버킷 준설기가 사용되는 등 기계화가 이루어진다. 공교육의 확대와 높은 교육열 역시 독일 근대화의 견인차 구실을 했으며 곳곳에 극장·박물관·미술관 등 문화 시설이 설립되었다. 1871년 비로소 역사에 처음 등장한 통일 독일은 이 시기의 비약적 산업화와 인구 팽창의 결과 경제력·행정·국방·외교·자연과학·기술 등에서 다른 제국들과 어깨를 겨루는 강국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대체로 보수적이었으며, 정치적 억압과 무기력이 지배하는 가운데 미미하게 자유주의가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해안 지역의 지형과 제방 축조 그리고 간척지 개발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18세기까지 유럽에서는 전쟁·질병·굶주림으로 말미암아 주기적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유럽의 인구가 고대 이래 끊임없이 감소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에 대처하여 당시의 절대주의 국가들은 여러 가지 주민 정책을 펼쳤다. 계획적으로 외국인들을 자기네 영토 내에 옮겨 살게 하는가 하면, 조혼을 할 경우에 조세 감면이나 산아장려금 지급 따위의 조처를 취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인구 증가를 꾀한 것이다. 경제 이론가나 프리드리히대왕 같은 절대군주들도 많은 인구가 국가의 정치·경제·군사력을 키우는 근본 조건이 된다고 보았다.
중세 이후 독일의 인구는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경작지의 수요도 늘어났다. 이 문제의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15세기부터 해 온 간척 사업이었다.
간척 사업에는 제방 축조가 필수적이었다. 해안 가까운 곳에 섬이 없는 경우 방파제를 쌓아 봤자 몰아치는 파도에 제방이 상하기 쉬웠다. 때문에 파도를 막아 주는 섬이나 갯벌이 제방의 입지 조건으로 유리했다.
간척 사업은 중세 때부터 네덜란드와 북해 연안을 따라 널리 시행되었으며 1610년경부터는 투기 조짐까지 보일 정도였다. 소택지에는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입지 않도록 땅을 둔덕지게 돋우어 집터를 조성했다. 하우케·엘케 부부의 집이 있는 언덕이 바로 그런 곳이다. 그 아래에는 보통 도랑으로 경계를 만든 습지 풀밭이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소택지 촌락은 건조한 고지대 마을과 대조되기 마련이다. ≪백마의 기수≫에는 이러한 지형과 풍습, 북해의 개펄, 바다 풍경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책 속으로

**≪백마의 기수≫, 153∼154쪽

“모두, 참아! 참으라고!”
하우케는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소리쳤습니다.
“1피트만 더 높여. 그러면 이 홍수에도 끄떡없어!”
폭풍우가 울부짖는 소리 속으로 일꾼들이 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개흙 덩어리가 털썩 떨어지는 소리, 수레바퀴가 덜거덕거리는 소리 그리고 위에서 던진 짚이 풀썩거리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사이로 누런 강아지가 추위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람과 수레 사이에서 이리저리 쫓기며 깽깽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는데, 갑자기 아래 구덩이에서 개의 비명 소리가 났습니다. 하우케가 내려다보니 누군가 강아지를 내동댕이쳐 굴러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불끈 노여움이 타올랐습니다.
“멈춰! 중지!”
그는 수레들이 있는 아래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젖은 진흙이 계속 돋우어졌기 때문입니다.
“왜요?”
아래에서 거친 목소리가 올라왔습니다.
“설마 하잘것없는 개새끼 때문은 아니겠죠?”
“멈추라고 하지 않았나!”
하우케가 다시 소리쳤습니다.
“그 개를 이리 데려와! 우리 공사장에서는 죄받을 짓은 안 돼!”
그러나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으며, 다만 진득진득한 진흙 몇 삽이 더 깽깽거리는 강이지 위로 던져졌습니다. 이때 하우케가 백마에 박차를 가하자 말은 한 번 소리를 내지르며 제방 아래로 내달렸고 모두들 앞을 비켜섰습니다.


☑ 지은이 소개

테오도어 슈토름은 1817년 북해 연안의 후줌에서 덴마크인으로 태어났다. 후줌에서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을 다녔다(1826∼1835). 1835년에는 뤼베크의 카타리내움으로 옮겨 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친다. 1838년에 베를린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으며, 이듬해에는 킬 대학으로 옮겨 학업을 계속한다. 1842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해에 후줌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다.
그의 고향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은 지리적·민족적으로 독일인과 덴마크인이 뒤엉킨 곳이었지만 법적으로는 덴마크 왕의 봉토였다. 1848년경부터 독일에서는 이 땅을 획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돌기 시작했다. 슈토름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1849년 ‘덴마크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는 청원서에 서명한다. 그리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군대와 덴마크군이 싸웠으나 결국 덴마크가 이긴다. 이 여파로 1852년 변호사 자격을 빼앗겼다. 그러나 1864년에 프로이센-덴마크 전쟁에서 프로이센군이 이겼다. 슈토름은 후줌의 지방관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1867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프로이센에 합병되며 관직이 없어지자 지방법원 판사가 되었다. 1874년에는 부장판사, 1879년에는 지방법원 지원장으로 승진하지만 1880년에 아직 정년이 남았는데도 일찍 퇴직한다. 1887년 그는 위암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고, 1888년 퇴직 이후부터 살아온 하데마르셴의 집에서 운명하여 후줌의 가족 묘지에 묻힌다.


☑ 옮긴이 소개

옮긴이 오용록은 1950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2000년에는 카프카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역서로는 프란츠 카프카의 ≪성(Das Schloss)≫,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 등과 로버트 발저, 릴케, 카프카, 클라이스트, 렌츠, 브링크만, 우베 팀 등에 관한 다수의 저술 및 논문이 있다. 강원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 목차

백마의 기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4년 4월 30일 수요일

토니오 크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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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
지은이 : 토마스 만(Thomas Mann)
옮긴이 : 윤순식
분야 : 독일 소설
출간일 : 2014년 4월 25일
ISBN : 979-11-304-1228-3  03850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168쪽


☑ 책 소개

독일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중편소설이다. 토마스 만의 문학 인생을 다섯 단계로 나눌 때, 제1기인 1903년에 나왔다. 이때 그는 ‘예술성과 시민성의 갈등’으로 고뇌하고 있었다.


☑ 출판사 책 소개

‘문학은 결코 천직(天職)이 아니라 저주’라고 하는 섬뜩한 표현이 들어 있는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1875∼1955)이 28세 때 발표한 작품이다. 이미 25∼26세 때 불후의 장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세상을 놀라게 한 터여서 ≪토니오 크뢰거≫는 세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잘 알다시피 토마스 만은 괴테를 좋아했고 자기 문학의 모범으로 삼았다. 그래서 괴테가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베르터를 죽이고 바이마르로 떠나가서 그곳에서 고전주의의 중심인물로 되었던 것처럼, 토마스 만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3, 4세대 토마스 부덴브로크와 하노 부덴브로크를 파멸시킴으로써 예술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재충전의 전기로 삼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온 그 작품이 ≪토니오 크뢰거≫였다.
토마스 만은 ≪토니오 크뢰거≫를 ‘나의 베르터’라고 표현했다. 그는 ≪토니오 크뢰거≫의 성립에 관해, 그 구상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쓰고 있던 시기에 했으며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뤼베크를 경유한 덴마크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작품에 반영했다고 말한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통해 죽음의 극복을 시도했다고 한다면 ≪토니오 크뢰거≫를 통해 삶에 대한 긍정을 시도했다. 즉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삶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죽음(정신)에 대하여 거부할 수 없는 하노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토니오 크뢰거≫에서 정신을 본질로 하고 있으면서 삶에 대해 끊임없는 동경을 하는 토니오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토니오는 그 자신의 ‘순수하지 못한 양심’으로 고뇌하는 작가이자, 예술에 전념하기 위해 일상적 삶을 회피하면서도 삶에서의 도피를 배반으로 느끼는 예술가다. 그에게 문학은 ‘결코 직업이 아니라 저주’다. 토니오는 “언어란 인간의 감정을 해방시켜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차갑게 만들어 얼음 위에 올려놓는 도구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토니오에게 예술가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감정이란, 따뜻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란, 언제나 진부하고 쓸데없는 것일 수밖에 없어요. 예술적인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타락한 신경 조직, 가식적인 신경 조직에서 비롯되는 불안·초조감과 차디찬 황홀경일 따름입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일상의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나 비인간적인 것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또 이상하게도 인간적인 것과는 동떨어져 아예 관계 자체를 맺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고 읊조린다. 
이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속편이라 할 수 있으며, 죽지 않고 살아서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하노의 고백’ 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토마스 만적 ‘젊은 베르터의 고뇌’다. 건실하고도 경건한 북독일 시민이었던 아버지의 가업과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어머니로부터 예술가 기질을 물려받은 토니오 크뢰거는 남쪽 지방 뮌헨으로 내려와 타락과 온갖 모험을 일삼는다. 그러나 그는 남독일 사람들의 예술가인 척하는 태도와 냉혹성보다도 북쪽 자기 고향 사람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된다.


☑ 책 속으로

**≪토니오 크뢰거≫, 134∼136쪽

그렇다고 해서 이야깃거리가 전혀 없다든지, 내 나름대로 이것저것 겪은 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향에서, 내 고향 도시에서는 심지어 경찰에 체포될 뻔한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는 나중에 직접 얘기하겠습니다. 요즘 들어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는 무엇인가 일반적인 것을 괜찮은 방식으로 말해 보고 싶은 날이 자주 있거든요. 
리자베타, 언젠가 당신이 나를 가리켜 시민, 길을 잘못 든 시민이라고 말한 것을 아직 기억하겠지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이름 붙여 준 것은 내가 그전에 무심결에 해 버린 이런저런 고백들에 휩쓸려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고백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그 말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나의 시민성과 ‘삶’에 대한 나의 사랑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는 걸 과연 당신은 알고 있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그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나의 선친은 북쪽 기질을 갖고 계셨습니다. 청교도 정신에서 나온 명상적이고 철저하며 정확한 성품을 지녔고 곧잘 우수에 잠기기도 하셨지요. 반면에 나의 어머니는 불확실한 이국적 혈통을 물려받으셨고, 아름답고 관능적이며 순진하셨고, 동시에 조심성이 없었고 정열적이었으며 충동에 따라 분방하게 사는 분이셨습니다. 이런 두 분의 혼합인 내가 예사롭지 않은 가능성들 ―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위험성들 ― 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혼합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예술의 세계 속으로 길을 잘못 든 시민, 훌륭한 가정교육에 대한 향수를 지닌 보헤미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예술가입니다. 정말이지 모든 예술성 속에서, 온갖 이례적인 것과 모든 천재성 속에서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 매우 모호한 것, 매우 불명예스러운 것, 매우 의심스러운 것을 꿰뚫어 보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시민적 양심입니다. 또한 나로 하여금 단순한 것, 진실한 것, 편하고 정상적인 것, 비천재적인 것, 단정한 것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등으로 가득 채워 주는 것도 바로 이 시민적 양심입니다. 


☑ 지은이 소개

토마스 만은 1875년 6월 독일 북부의 한자동맹 소속 도시 뤼베크의 부유한 집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세계적인 작가 하인리히 만이 바로 그의 형이다). 한자동맹 도시란 전통적으로 비교적 좋은 자치·자유를 누려 온 고장이다. 이런 분위기가 그의 예술성에 영향을 준 듯하다. 
1901년, ≪사회≫지(誌)에 단편 <타락>을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1905년 2월에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했다. 1929년에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나치당에 비판적이어서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자 망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 BBC 라디오 방송에 다달이 출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 정권의 비민주성과 비인간성을 호소했다. 
1944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거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스위스에 안식처를 정했다. 죽을 때까지 세계 평화와 독일의 통일을 진심으로 염원하다가, 1955년 8월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서 타계했다. 


☑ 옮긴이 소개

윤순식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인문대학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독일어 교수를 지냈고,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박사 후 연수(Post-doc) 과정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현대 독문학을 연구했다. 한양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오랫동안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 <토마스 만의 소설 “마(魔)의 산(山)”에 나타난 반어성(反語性) 고찰(考察)>, <“부덴브로크 일가”에 나타난 아이러니 연구> 등을 썼으며, 저서로는 ≪아이러니≫(한국학술정보), ≪토마스 만≫(살림출판사) 이외에 다수가 있다. 


☑ 목차

토니오 크뢰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4년 4월 12일 토요일

약자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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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약자들의 힘 Die Kraft der Schwachen
지은이 : 아나 제거스
옮긴이 : 장희창
분야 : 소설 > 독일소설
출간일 : 2009년 8월 10일
ISBN : 978-89-6406-201-2
가격 : 18,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269쪽



☑200자 핵심요약

역사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왕조 중심, 권력 중심의 역사관이 아니라 민중들, 약자들의 존재야말로 역사의 주체였음을 증언했던 작가 아나 제거스. 아나 제거스는 아홉 가지 이야기를 통해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작지만 강한 사람들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역사는 강자와 승리자들에 의해 쓰였지만, 실제 역사는 그들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리라. 이면에 감추어진 약자들. 비록 그들은 약자로 불리고 있지만, 그들이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활약한 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 책 소개

과연 역사는 강자와 승리자들만의 것인가?
청년 알렉산드로스는 인도를 정복했다네.
그는 혼자였던가?
카이사르는 갈리아 사람들을 무찔렀다네.
그의 옆에는 요리사도 없었던가?
(…)
책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승리.
누가 승리자들의 연회를 위해 요리를 만들었는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이름을 우리가 항상 떠올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우리가 말이다.
-아나 제거스
작가의 인생만큼이나 다양하고 실감나는 아홉 가지 이야기
이 작품은 사회 변혁을 예술의 본질적 기능으로 규정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해방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아들의 뒤를 이어 종군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 정복자들을 험준한 산으로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리는 소년의 이야기, 프랑스 병사의 순수한 애정에 끌려 세속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한 사랑을 바치는 독일 처녀의 이야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의 주체는 소리 없이 사라져간 약자들이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글에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살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를 확립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약육강식의 현실 논리, 인간의 자유를 자본의 자유로 대체시켜 버린 자본주의 체제, 제국주의하의 억압된 민중들의 삶은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와 기반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 나타난 민중들의 삶은 놀랍도록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다. 바로 그 공감의 뿌리가, 현실을 괴롭지만 보다 명확하게 직시토록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는 바로 이 작품의 목소리가 진실하다는 방증인 것이다.
파시즘 체제 아래, 약육강식의 현실 논리 속에서, 억압받고 신음하는 약자들. 그러나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약자들. 이 작품을 통해 제거스는 이들이 바로 역사의 주체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역사를 정교하고 강직하게 다시 쓰고 있다.

☑ 책 속으로
In dem Flüchtlingsstrom, der über die Pyrenäen zog, von Francos Soldaten auf der Erde und aus der Luft bis zur äussersten Grenze des Heimatbodens verfolgt, war die Schweigert allein mit ihrem kleinen, leichten Handkoffer.
지상과 공중의 프랑코 군대에 의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고향 땅의 외곽 국경선까지 추격당했던 구불구불한 피난민 대열 속에서, 슈바이게르트 부인은 작고 가벼운 손가방을 든 채 단 혼자였다.


☑ 지은이 소개

아나 제거스(Anna Seghers, 1900∼1983)
독일 남서부의 마인츠에서 부유한 고미술상의 외동딸로 태어난 제거스는 여고 시절 시인 실러에 심취한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역사, 미술사, 중국학을 공부하였고, 1차 세계대전 동안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망명해 온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는다. 연구와 더불어 창작 활동에도 매진했고, 1929년 ≪성 바르바라 마을 어부들의 봉기≫로 클라이스트 상을 받아 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 1928년 독일 공산당에 가입한 그녀는 곧이어 프롤레타리아혁명작가동맹의 회원이 되었고, 망명지에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해 1942년 대표작인 ≪제7의 십자가≫를 완성한다. 나치 정권이 무너진 후 1946년, 당시 소련 점령 지역이던 후일의 동독 베를린으로 귀환한다. 1951년에 동독 예술원 창립회원이 되었고, 1952년 독일작가동맹 의장으로 선출된다. 이후 1980년에는 노동 영웅 칭호를 받았고, 1981년 소련으로부터 10월 혁명 훈장을 받았다. 이후 1983년 6월 동베를린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 ≪성 바르바라 마을 어부들의 봉기≫(1928), ≪제7의 십자가≫(1942), ≪죽은 자들은 영원히 젊다≫(1949), ≪약자들의 힘≫(1965), ≪기이한 만남≫(1973), ≪아이티의 세 여인≫(1981)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장희창
1955년 부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와 동 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문학박사). 현재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독일 고전 번역과 고전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독서 평론집 ≪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가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색채론≫, ≪괴테와의 대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양철북≫, ≪게걸음으로 가다≫, ≪나의 세기≫(공역), ≪현대시의 구조≫, ≪약자들의 힘≫, ≪미메시스에서 시뮬라시옹까지≫, ≪책그림책≫, ≪빈털터리들≫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첫 번째 이야기 어머니
두 번째 이야기 안내자
세 번째 이야기 예언자
네 번째 이야기 갈대
다섯 번째 이야기 재회
여섯 번째 이야기 대결
일곱 번째 이야기 연인
여덟 번째 이야기 투오마스가 조르자 반도에 가져온 선물
아홉 번째 이야기 실향민의 귀환
아나 제거스 연보
옮긴이에 대해

2014년 4월 10일 목요일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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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Der abenteuerliche Simplicissimus)
지은이 : 궈한스 야코프 크리스토프 폰 그리멜스하우젠(Hans Jacob Christoph von
Grimmelshausen) 
옮긴이 : 박신자
분야 : 독일 소설
출간일 : 2014년 4월 11일
ISBN : 979-11-304-1223-8 03850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218쪽



* 80% 발췌


☑ 책 소개

독일 바로크 시대의 첫 소설 작품. 30년 전쟁 당시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담았다. 양치기로 단순 무식하게 살아가던 소년이 전쟁에 휩쓸리면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 준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는 30년 전쟁 당시 헤센 주의 슈페사르트 농가에서 살던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다. 퇴각하는 군인들이 쳐들어와 집을 부수고 불태웠으며, 부모와 헤어진 소년은 혼자 숲으로 도망쳐 은둔자를 만났다. 은둔자는 자신의 이름조차도 모르는 소년을 거두어 단순한 아이라는 뜻을 가진 ‘짐플리치우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기독교 교리에 따른 도덕관과 읽고 쓰기를 가르쳐 주었다. 소년이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은둔자가 죽고 소년은 다시 군인들에게 끌려가 하나우의 군 사령관 람자이를 만났다. 은둔자의 매부인 사령관은 소년을 시동으로 삼았으나 단순하기에 끝없이 바보짓만 하는 이 소년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송아지 가죽을 입은 바보 광대로 만들었다. 소년은 여기서 탈출했지만 다시 군 부대에 붙잡히는 등 위험하고도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가운데 황제 휘하 마그데부르크 부대의 장교 헤르츠브루더를 알게 되었고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아들 헤르츠브루더와는 평생 친구가 된다. 소년은 계속 군인으로 근무하거나, 패잔병으로 쫓기다 다시 하급 군인으로 돌아가 탈영하고, 결혼하고, 사냥꾼과 도적도 되어 보고, 돈도 모으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등 모험을 동반한 다양한 인생살이를 경험한다.
우연히 헤르츠브루더와 다시 만나 행복했으나, 친구가 죽은 후 다시 경박한 생활을 하며 방황하다가 외국에서 유괴되기도 하였고, 한국과 일본까지 여행 갔다가 아프리카와 유럽을 거쳐 3년 뒤 독일로 돌아온다.
그가 잠시 정착하여 온천장을 경영할 때 뜻하지 않게 슈페사르트의 아버지를 다시 만났으나 정작 그의 친아버지는 바로 숲에서 그를 가르친 귀족 출신 은둔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방랑 생활과 여러 가지 모험적인 사건을 겪고 난 후 세상의 무상한 삶에 회의를 느낀 주인공은 자기 아버지처럼 은둔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주인공은 여러 가지 세속적인 삶을 살았으면서도 세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마음을 품는다. 소설의 시작부터 계급에 대한 풍자, 전쟁의 참상 그리고 전쟁 중 농부와 군인들의 첨예한 대립을 통한 부정적인 사회적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계급 풍자와 끝없는 자기 아이러니를 통한 시대 비판적 논의들이 종교적·도덕적 성찰과 더불어 주인공의 행동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 소년이 전쟁터를 전전하며 때로는 부도덕하게 배회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독일 민담에서 가져온 풍자소설과 스페인의 피카레스크소설에서 온 유희적인 이동 배경을 사용하고 있다. 


☑ 책 속으로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 26~28쪽
기병들이 첫 번째로 한 일은 말을 마구간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다음 그들은 완전 타락하고 썩어 빠진 이상한 행동을 했다. 비록 몇몇은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고기를 썰고 끓이고 굽고 했지만, 반대로 다른 군인들은 집 위아래를 휘젓고 다녔다. 그래서 금빛 양가죽 같은 것을 숨길 만한 어떤 비밀 장소도 안전하지 못했다. 다른 군인들은 천과 옷, 세간살이들을 마치 고물상이라도 차리려는 듯 크게 뭉쳐 쌌다. 가져갈 생각이 없는 물건들은 깨부수었다.
몇몇 군인들은 우리가 양과 돼지들을 아주 숨길 수 없게끔 하는 것처럼 칼로 건초와 짚 더미를 찔렀고, 다른 군인들은 이불의 솜들을 털어 내고는 마치 그 위에서 자는 것이 더 좋기라도 하다는 듯, 이불 안에 베이컨 또는 말린 육포와 세간들을 집어넣었다. 다른 군인들은 마치 영원히 여름만 있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난로와 창문을 깼고, 구리와 주석 그릇들을 한데 모아 부수고 휘어지거나 불량한 것들을 쌌다. 마당에 장작이 몇 길이나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기에 이불 궤짝, 상, 의자 그리고 긴 의자들을 불태웠다. 아무리 그들이 꼬치구이를 좋아하기로서니, 아니면 단 한 번의 식사로 끝내려고 했던 것인지 그들은 냄비와 그릇들을 두 동강 냈다.
우리 하녀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외양간에서 치욕적인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하인을 바닥에 묶어 누이고 입에 합판을 끼우고 우유통에 썩은 물을 가득 담아 스웨덴 음료수라 하면서 그의 몸에다 부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그들 일행의 일부를 다른 장소로 안내하도록 하인에게 강요하였다.
그곳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가축들이 잡혀 있었는데, 그들은 그 모두를 우리 집 마당으로 끌고 왔다. 그 가운데 크난과 모이더, 그리고 우르젤레도 있었다.
그들은 피스톨에서 부싯돌을 빼고, 그 대신 농부들의 엄지손가락을 그 속에 집어넣고 조여 대기 시작했다. 거짓말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고문하고자 붙잡힌 농부들 중 한 사람을 마치 마녀를 불태우듯 벌써 오븐에 처넣고 불을 들고 경고했다. 그들은 또 다른 사람의 머리를 밧줄로 묶은 다음 곤봉을 끼워 돌리며 조여 댔고, 입·코·눈 주위에 피가 튀도록 매질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말하자면 군인들 각자가 농부들을 괴롭히려고 스스로 고안한 것들로, 농부들 모두 이런 이상한 고문들을 당했다.


☑ 지은이 소개

그리멜스하우젠은 1621년 루터교의 도시 겔른하우젠에서 출생했다. 30년 전쟁 시기에 태어난 탓에 그의 유년 시절은 평탄치 못했다. 12세에 집이 파괴되고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하나우로 갔다. 전쟁 중 스웨덴 군대와 괴츠 장군의 군대 등에서 포로가 되거나 군 복무를 하면서 여러 도시를 계속 전전했다. 1639년부터 1648년까지는 바덴 지역 오픈부르크 샤우엔 성의 행정을 맡았고 1643년부터는 연대 서기관을 지내기도 했다. 종전 후 가톨릭교에 귀의했으며 1649년 카타리나 해닝거와 결혼했다. 그 후 샤우엔 성의 백작의 토지 관리인을 지냈고, 1656년에서 1658년까지 가이스바흐에서 ‘은별’ 여인숙을 경영했다. 1662년에서 1665년까지는 울렌부르크 성의 성주였으며, 1667년부터는 렌헨의 시장으로 일했다. 작가의 이런 다양한 사회 경험과 군 부대를 전전한 전력이 작품 속 주인공의 삶에도 간간이 반영되어 있다.


☑ 옮긴이 소개

박신자는 성신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백석대학교 그리고 덕성여자대학교(사회교육원)에 출강하였으며, 성신여자대학교의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는 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동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문학적 아르누보>, <인상주의문학의 가능성과 그 실례>, <괴테의 그림 묘사> 등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로버트 발저의 ≪프리츠콕의 작문시간≫과 ≪니벨룽겐의 노래≫, 저서 ≪문학과 미술의 대화≫, ≪다채로운 세상, 움직이는 문화≫ 등이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
제5권
옮긴이에 대해

2013년 6월 3일 월요일

운디네(Und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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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운디네(Undine)
지은이 :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e)
옮긴이 : 이미선
분  야 : 독일 소설
출간일 : 2013년 6월 5일
ISBN : 978-89-6680-992-9 03850
18,000원 / 사륙판 _  무선제본 / 226쪽



☑ 책 소개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의 1811년 작품으로, 호프만, 안데르센 등 많은 동시대 및 후대 작가에게 영감을 준 물의 정령 이야기다. 물의 정령 운디네가 기사를 보고 사랑해 그와 결혼하나 행복한 생활도 잠시뿐 끝내는 기사를 죽일 수밖에 없게 되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지금 봐도 흥미진진해  왜 많은 사람이 이 작품에 열광했는지 알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독일 문학에서 물의 정령이 언급된 것은 1320년 슈타우펜 가문의 전설을 다룬 시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물의 여인에 대한 상상을 확고하게 해 준 것은 1800년대 초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서였다. 특히 푸케의 ≪운디네≫(1811)는 물의 여인에 관한 이전의 모든 상상을 구체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모든 분야에서 물과 여인에 대한 이미지를 확고하게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파라셀수스의 글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푸케의 작품 주인공 운디네는 물이라는 자연 요소가 가진 긍정적·부정적 힘을 대표한다. 어부의 양녀로서 철없는 행동만 일삼는 그녀는 18세나 되었지만 살림을 돕거나 예절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마치 숲 속을 흐르는 맑은 물처럼, 자연 그대로의 천성을 갖고 있다. 자연 속의 물이 인간을 배려해서 흐르거나 고여 있지 않은 것처럼, 운디네는 본성 그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비록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인간의 영역에 살고 있지만, 그녀는 아직 물에, 즉 순수한 자연에 속해 있는 존재였다.
이러한 운디네는 기사 훌트브란트와의 결혼을 통해 영혼을 얻게 된다. 가볍고 유쾌한 정령 운디네에게 영혼이란 “뭔가 사랑스러운 것이지만, 또 뭔가 아주 두려운 것”, “무거운 압박”으로,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걱정과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영혼을 얻은 운디네는 인간, 특히 남성이 바라는 최고의 여성으로 변하게 된다. 남편인 훌트브란트가 “내가 그녀에게 영혼을 주었다면, 분명 내 영혼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준 게 분명해”라고 말할 정도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정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며, 신을 경외하는 여성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갖고 있는 물의 요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항상 운디네의 주변을 도는 삼촌 퀼레보른은 그녀가 물의 속성, 자연의 힘과 절대 분리될 수 없음을 알려 준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신비스러운 자연의 힘은 결국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고, 그녀를 멀리하게 만든다.
운디네가 영혼을 가짐으로써 인간의 도덕을 지키는 것처럼, 남편 훌트브란트도 다른 존재와 결혼함으로써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 사항을 갖게 된다. 절대로 물가에서 운디네를 모욕하면 안 된다는 금기를 지켜야만 운디네와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훌트브란트는 이 금기를 깸으로써 운디네를 잃고 만다. 비록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운디네가 죽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인간의 여인과 혼인을 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법칙 모두를 어기게 된다.
운디네는 남편보다 더 훌륭한 영혼을 가짐으로써 사랑의 고뇌와 고통을 감수하고, 사라져 버릴 육신 속에 불멸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하지만, 물의 정령으로서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을 배반한 남편에게 반드시 복수해야 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분노한 물이 모든 것을 파괴하듯이, 남편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미 인간의 영혼을 가짐으로써 순화된 자연이 되어 버린 그녀는, 남편을 자신의 눈물로 질식시켜 죽인 뒤에도 남편의 무덤을 에워싸고 흐르는 시냇물이 되어 한없이 슬픔을 간직하게 된다.
맑은 물처럼 가볍고 경쾌하던 운디네는 영혼을 얻음으로써 진실로 사랑하는 법을 알고 그와 함께 고뇌도 알게 되었지만, 결국 원래의 요소로 돌아가고 만다. 영혼을 가져야만 한다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인간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영혼을 얻었으나 그 순수한 영혼 때문에 상처를 입으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수를 가해야만 하는 운디네는 자발적으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푸케 당시의 여성들과 다를 바가 없다.


☑ 책 속으로

그때 문이 휙 열리더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발의 소녀가 웃으면서 잽싸게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그냥 저 놀리려고 그러신 거죠. 아버지 손님이 어디 있어요?” 바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녀도 기사를 보았고, 이 잘생긴 젊은이 앞에 놀라서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훌트브란트는 이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보고 기뻤고, 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정말 마음속 깊이 새겨 두고 싶었다. 소녀가 놀랐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게 내버려 두는 것일 뿐, 이제 곧 수줍어서 자신의 눈을 피해 몸을 돌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소녀는 한참 동안 훌트브란트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와서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는 그의 가슴을 장식한 호화로운 사슬에 달려 있는 금메달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머, 잘생기고 친절한 손님, 어떻게 우리 초라한 오두막에 오시게 됐어요? 우리한테 오는 길을 발견하기 전에 세상을 몇 년씩이나 떠돌아야만 했나요? 저 황량한 숲에서 나오셨어요, 멋진 손님?” 어부의 아내가 소녀를 야단치는 바람에 기사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1장 기사는 어떻게 어부에게 오게 되었나> 중에서


☑ 지은이  소개

푸케는 1777년 하벨 강가의 브란덴부르크에서 태어나 1843년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칼 드 라 모테 푸케 남작(Friedrich Heinrich Karl Baron de la Motte Fouqué)이라는 독일 세례명과 드 생 쉬렝 남작, 드 라 그레브 영주(Baron de Saint-Surin, Seigneur de la Greve)라는 프랑스 세례명을 가진 그는 프로이센 국민이었으나 조상은 프랑스 귀족이었다.
그의 이름 프리드리히는 대부였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서 따온 것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그의 대부가 된 것은 조부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푸케의 조부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드 라 모테 푸케(1698~1774)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으로부터 육군 중장에 임명되고 검은 독수리 훈장을 받았다. 이러한 조부의 영향으로 아주 어린 시절 군에 입대한 푸케는 이미 1794년, 17세에 최연소 사관후보생으로서 라인 전쟁에 참가했고, 이후 아셔레벤에서 바이마르 대공의 장교를 지냈다.
1798년에 마리아네 폰 슈배르트와 결혼했으나 1802년  이혼, 1803년 세 자녀를 둔 미망인 카롤리네 필리피네 폰 로호(결혼 전 성은 폰 브리스트, 1773~1831)와 재혼했다. 그녀는 영지를 소유한 폰 브리스트 가문의 상속녀였다. 전 남편인 폰 로호는 그녀와 이혼 수속 중 노름 빚 때문에 자살했다. 카롤리네와 결혼 후 푸케는 베를린과 아내의 영지인 넨하우젠에 거주했다. 1803년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딸 마리 루이제 카롤리네 드 라 모테 푸케(1803~1864)가 태어났다. 푸케의 결혼 생활은 평탄했고, 넨하우젠 성은 낭만주의 작가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내 카롤리네 역시 낭만주의 독일 여성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남편과 함께 문학적 명성을 누렸다.
푸케는 처음에는 펠레그린(Pellegrin)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북유럽의 전설, 중세 프랑스의 기사 이야기를 중심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 낸 그의 초기 작품들은 소재와 서술 기법에서 이미 훗날 그의 작품을 결정하는 모든 요소를 담고 있었다. 1808년부터 1820년까지 약 10여 년 동안 푸케는 삶에서 또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1811년 발표된 ≪운디네≫는 환상적 요소와 동화적 색채를 띤 소설로서 독일 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까지 푸케의 이름을 알리게 했다. 하이네는 푸케가 낭만주의 서사 작가들 중 유일하게 모든 대중을 감동시킨 작품을 썼다고 평했고, 아이헨도르프는 푸케가 대중에게는 낭만주의의 중심인물로 인식된다고 언급했다. 낭만주의 작가인 슐레겔 형제, 장 파울, 에른스트 호프만 역시 그를 칭찬했다. 그러나 푸케의 인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운디네≫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반복되는 기사 이야기에 독자들은 진저리를 냈다. 181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유사한 소재의 글을 계속 발표했다. 그는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는 보잘것없는 글을 쓰는 작가로 치부되었고, 통속소설 작가의 전형으로 평가되었다. 한때 그를 칭찬했던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그와 거리를 두었고, 아이헨도르프는 푸케를 “낭만주의의 돈키호테”라고 비꼬았다. ≪운디네≫에 대해서 대단한 찬사를 퍼부었던 하이네도 푸케의 후기 작품에 대해 “짜증스럽다”고 표현했다.
1831년 두 번째 아내 카롤리네가 사망한 뒤, 55세의 푸케는 딸 마리를 돌보던 알베르티네 토데와 결혼했다. 여전히 넨하우젠 성에 거주하던 그는 카롤리네가 첫 번째 결혼해 나은 아들 테오도르에 의해 넨하우젠에서 추방당한 뒤, 할레로 이주해 9년간 그곳에 머물렀다. 푸케의 젊은 날의 친구이자 훗날 프로이센의 왕이 된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1841년 푸케를 베를린으로 불러들이고 연금을 올려 주었다. 이후 오늘날에는 라인하르트슈트라세가 된 칼슈트라세에서 그는 세 번째 아내인 알베르티네, 아들 칼 프리드리히 빌헬름 그리고 장모와 함께 살았다.
1843년 푸케는 베를린 자택의 계단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사람들이 그를 침대에 눕혔으나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치 죽음을 미리 예견이나 한 듯, 1월 21일 아침 푸케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만세, 주님이 내 곁에 계신 것만 같다. 그러나 죽음 또한 가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주님이 훨씬 더 가까이 계신다.”
그렇게 1843년 1월 23일 낭만주의 작가 푸케는 사망했다. 1월 26일 그는 베를린의 무덤에 안장되었다. 오늘날 푸케는 독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운디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작품이 잊혀졌지만, 푸케는 많은 작가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시들은 85명의 작곡가들에 의해 140곡의 노래로 남겨졌다.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슈베르트도 푸케의 시 중 6편에 곡을 붙였다.
푸케는 세 번 결혼해서 세 자녀를 얻었다. 딸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첫째 아들 프리드리히는 처음에는 군인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작곡가가 되어 몇몇 작품을 남기고 1874년 후손 없이 사망했다. 푸케가 사망하고 6일이 지난 뒤에 태어난 둘째 아들 발데마르는 5명의 아이를 얻었고, 이 자녀들의 후손 중 한 명이 현재 함부르크에 살고 있다.


☑ 옮긴이 소개

이미선
이미선은 홍익대학교 독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독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한 책으로는 ≪존넨알레≫, ≪과학사의 유쾌한 반란≫(공역), ≪별을 향해 가는 개≫, ≪불의 비밀≫, ≪막스 플랑크 평전≫,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공역), ≪불순종의 아이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천사가 너무해≫, ≪수레바퀴 아래서≫ 등이 있다.


☑ 목차

헌사
1장 기사는 어떻게 어부에게 오게 되었나
2장 운디네는 어떻게 어부에게 오게 되었나
3장 그들은 어떻게 운디네를 다시 찾았나
4장 기사가 숲 속에서 우연히 만난 것에 대해
5장 기사는 곶에서 어떻게 살았나
6장 결혼에 대해
7장 결혼식 날 밤 일어난 그 밖의 일
8장 결혼식 다음 날
9장 기사는 어떻게 어린 아내를 데리고 돌아갔나
10장 도시에서의 삶
11장 베르탈다의 성명 축일
12장 그들은 어떻게 자유 도시를 떠났나
13장 그들은 링슈테텐 성에서 어떻게 살았나
14장 베르탈다는 어떻게 기사와 함께 돌아왔나
15장 빈으로의 여행
16장 그 이후 훌트브란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17장 기사의 꿈
18장 기사 훌트브란트는 어떻게 결혼식을 올렸나
19장 기사 훌트브란트는 어떻게 묻혔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2013년 1월 4일 금요일

카프카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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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카프카 단편집
지은이 : 프란츠 카프카
옮긴이 : 권혁준
분  야 : 독일 소설
출간일 : 2013년 1월 7일
ISBN : 978-89-6680-615-7 03850
16,500원 / 255쪽



☑ 책 소개

이 책에는 대표작인 <변신>을 비롯해 <선고>, <시골 의사>,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단식 광대> 등 모두 다섯 작품이 실렸다. 카프카의 많은 작품들이 여러 번역서로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책과 다른 번역서의 결정적 차이는, 카프카를 전공한 역자가 방대하고 자세한 해설을 통해 카프카의 드넓은 문학 세계와 정교한 작품 분석의 사례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카프카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 출판사 책 소개

이 책에서는 카프카의 작품 중 카프카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다섯 단편을 골라 실었다.
첫 작품 <선고(Das Urteil)>는 카프카의 문학 역정에서 첫 ‘돌파구’에 해당하는 소설로 호평받았을 뿐 아니라 이후 카프카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이 들어 있어 가장 많이 읽히면서 아울러 가장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는 소설이다. 둘째 작품 <변신(Die Verwandlung)>은 카프카가 시민사회와 글쓰기 사이에서 갈등하며 실존적인 위기를 겪었던 1912년 11월에 쓰인 소설로 카프카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셋째 작품 <시골 의사(Ein Landarzt)>와 넷째 작품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Ein Bericht für eine Akademie)>는 1917년에 쓰인 것으로 모두 중기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작품 <단식 광대(Ein Hungerkünstler)>는 1922년, 그러니까 말기에 쓰인 소설이다.
시민적인 삶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불편을 느낀 카프카가 남긴 작품들은 독자들을 사로잡으면서도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 흔히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5년 이후에 나온 엄청난 분량의 연구서들과 저작들 그리고 다양한 방향에서 이루어진 해석 시도들이 이를 말해 준다. 이러한 난해함은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고 구체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서술된 내용이 일반적으로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인상, 다시 말해 서술의 냉철함과 서술된 내용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따라서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폐쇄적이다. 여기에는 20세기의 환상성이라고 불릴 수 있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꿈의 세계를 헤매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하는 것도 한몫을 한다. 이에 따라 그의 작품에 대해 작품 내재적인 해석 외에도 정신분석학적, 철학적(실존주의적), 사회학적, 전기적, 종교적 해석 등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어 왔다. 또 유대주의가 끼친 영향도 카프카의 작품 이해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쩌면 카뮈나 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한편으로 해석을 촉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해석을 거부하는 매력이 바로 카프카 작품의 위대함일 수 있다.
작품에 나타난 세계가 독자의 눈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카프카로서는 자신이 보는 ‘현실’을 기록한 것이다. ‘비현실’로 보이는 세계는 실은 카프카가 독자들에게 ‘진짜 현실’을 볼 수 있게 제시한 환상의 세계인 것이다. 예를 들어 <변신>에서 거대한 갑충으로 변한 주인공의 운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 내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극단적 소외를 즉물적으로 보여 준 카프카의 문학적 착상이다.
카프카가 이러한 ‘현실’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구스타프 야누흐와 나눈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프라하에서 개최된 피카소 전시회를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야누흐가 카프카에게 “피카소는 방자한 데포르마시옹(변형, 왜곡)의 화가”라고 말하자, 이에 대해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피카소)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 아직은 형체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을 묘사하고 있다. 예술은 하나의 거울이다. 예술은 때로는 시계와도 같이 ‘앞서 가는’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 속에 나타난 기형화 내지 데포르마시옹은 카프카의 비현실적인 묘사와 동일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으며, 이러한 언급은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열쇠가 될 것이다. 피카소는 기형화된, 추악한 그림 속에 진실을 담고 있으며, 카프카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세계를 통해 진짜 현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예술은 대상물(경험적 현실)의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현실을 재현하고자 하는 서구 모더니즘 예술 추세에도 부응한다고 볼 수 있다.


☑ 책 속으로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에서 한 흉측스러운 갑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드니 활 모양의 여러 각질로 나뉘어 있는 배가 갈색으로 불룩하게 솟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 둥그스름한 배 위에 이불이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듯 가까스로 걸쳐져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다리들이 무력하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변신> 중에서 


☑ 지은이  소개

흔히 <변신>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주옥과 같은 단편들과 세계문학에 손꼽히는 장편소설 ≪실종자(Der Verschollene)≫, ≪소송(Der Proceß)≫, ≪성(Das Schloß)≫ 등을 독일어로 남겨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프라하 출신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20세기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문학은 특히 20세기 중반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다시 발굴되어 높이 평가받았고 ‘카프카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독특한 세계를 형성하면서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충격을 주며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이는 그가 현대인이 겪는 소외와 사회에서의 개인의 고립을 정확하고 예리하며 파격적인 형태로 묘사해 냈기 때문이었다. 소외의 문제는 카프카의 작품을 관류하는 중심적인 주제다.
카프카는 1883년 7월 3일 체코의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프라하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08년부터 프라하 소재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근무하다가 폐결핵에 걸려 퇴직한 후 1924년 6월 3일 빈 교외 키얼링(Kierling) 요양소에서 마흔한 살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시신은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도중에 세 차례에 걸친 약혼과 파혼이 있었는데, 이중 두 차례(1914, 1917)의 상대는 펠리체 바우어였고 다른 한 번(1919)은 율리에 보리체크(Julie Woryzek)였다. 다른 여인과의 관계, 이를테면 밀레나 예젠스카(Milena Jesenská)와의 교제(1920∼1922)와 병세가 악화되었던 시절 도라 디아만트(Dora Diamant)와의 행복했던 결합(1923∼1924) 등 두세 번의 연애 사건을 제외하면 외면상 큰 파란이 없는 평범한 일생을 살았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아주 불행한 고뇌의 41년이었다.


☑ 옮긴이 소개

권혁준
권혁준은 서울대학교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했다. 이어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독문학, 영문학, 철학을 전공한 후 2006년 프란츠 카프카 연구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에서 근현대 독문학, 독일 문화 및 유럽 문화, 독일 영화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적인 번역서로는 에른스트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등이 있다.


☑ 목차

선고
변신
시골 의사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단식 광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니벨룽겐의 노래(Das Nibelungen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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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겐의 노래(Das Nibelungenlied)
프란츠 퓌만(Franz Fühmann) 지음 / 박신자 옮김
분야 : 독일 소설
출간일 : 2012년 10월 18일
ISBN : 978-89-6680-571-6 02850
18000원 / A5 무선제본 / 282쪽
   

☑ 책 소개

12세기 중세 고지독일어로 쓰인 영웅서사시를 개작한 소설이다. 고대 독일 문학 전성기를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영웅서사시를, 퓌만이 현대어로 가능한 한 쉽게 번역하고 변형시켰다. 니벨룽겐 전설의 요소들은 북유럽 신화 또는 게르만 신화와 깊이 연관되었다. 상세한 묘사로, 많은 영웅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 간의 첨예한 갈등을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지크프리트의 죽음, 그리고 크림힐트의 복수. 처참한 비극의 화려하고 장대한 분위기를 느껴 보라.


☑ 출판사 책 소개

≪니벨룽겐의 노래≫는 700년 동안 서사시 낭독자(가수)에 의해 구전으로만 이어져 온 이야기가 여러 번 변형되어 1180년에서 1210년경 사이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서사시의 지은이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다만 작품의 생성 지역 중 하나인 옛 파사우와 빈에 대한 상세한 지리적 지식이 나타나고, 이 지역을 관할한 주교였던 볼프거 폰 헤를라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파사우 주교의 관할권에 속했던 지식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치팔≫,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트리스탄≫, 그리고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의 ≪미네장≫과 더불어 독일 고전문학 전성기의 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2부로 나누어지는 작품은 영웅서사시 형식이며 각 4행의 운문으로 이루어져 마지막 2379연까지 탁월한 언어적 기교를 유지하고 있다. 이 연들은 길이가 각각 다른 39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각 장마다 제목이 붙어 게르만의 전설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들이 절대 봉건주의 시대의 궁전 생활 그리고 기사도 정신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제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오늘날의 라인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지역의 도나우 동남부 지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부는 지크프리트의 죽음, 2부는 크림힐트의 복수가 중심이 되는 방대한 이야기다. 이 전체 줄거리는 보름스 왕국의 크림힐트라는 아름다운 공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다.

1부 크림힐트와 지크프리트의 이야기, 2부 크림힐트가 훈족 왕의 왕비가 되어 부르군트족에게 복수한다는 줄거리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하는데, 407년 민족 이동 시기에 부르군트족이 보름스를 정복하고, 437년에 훈족의 에첼(아틸라) 왕이 서유럽에 침입해 부르군트족을 굴복시킨 역사적 배경이 작품에도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하고 장대한 분위기와 다른 한편으로는 비통하고 침울한 분위기가 교차되는 이야기 ≪니벨룽겐의 노래≫는 계몽주의 시대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독일인들이 이 이야기 소재에서 민족적 동질성 내지 국가의 본질을 찾게 되면서부터 보다 큰 의미가 부여된 국민 서사시로 승격되었다.

제3제국 시대에는 니벨룽겐의 영웅들이 보였던 절대 충성처럼 게르만족의 투쟁 정신과 절대 복종이 민족 이념을 위한 수단으로 남용되기도 했다.

권력자들의 정치적 목적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1854∼1874)에도 적용되었다. 작품의 소재와 게르만 신화 그리고 음악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열광과 도취적인 분위기로 말미암아 바그너가 민족주의에 이용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때 바그너는 새로운 민족 신화의 대변자이자 예언자로 추앙되기도 했다.

1945년 이후 이 작품의 소재가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동시에 외국에서 밀려들어 온 판타지 문학의 영향으로 니벨룽겐 전설의 몇몇 요소들(반지 모티프가 새로 추가)이 다양한 시각에서 새롭게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작품에 대한 시각이 시대마다 다르게 수용되고 있는 가운데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필사본에서 나타나는 모순적인 내용들이 상당히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구전으로 전해 오던 작품이 즉흥시와 문학작품이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대와 문화의 간격을 극복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게르만 선사시대의 신화적 소재를 기독교 문화의 영역에서 수용해야 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게다가 니벨룽겐족과 부르군트족 사이의 구분이 없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마치 니벨룽겐족이 부르군트족으로 편입되는 것 같은 인상도 준다.

작가 퓌만도 이런 특수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니벨룽겐의 노래≫를 청소년 수준으로 개작하고자 했다. 비록 중세 독일어가 우리에게 낯선 언어지만 그래도 오늘날 번역에 중세 독일어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번역과 개작을 동시에 감행했다.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아득한 옛날 옛적의 궁정 문화와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여러 다양한 감정, 도덕, 신앙심 그리고 심리적인 것뿐 아니라 궁정의 정치적 모략과 술수, 이에 맞서는 교활한 정치와 인간을 다루는 지혜로운 능력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인간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삶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니벨룽겐의 노래≫가 비록 현시대와 시간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과거를 경험시켜 현재를 영위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생생한 의미가 있다.


☑ 책 속으로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그렇게 자만하지 마라! 내가 그토록 순진하지만 않았더라도 생명을 보존했을 것이다! 이제 크림힐트가 걱정된다. 군터 왕이여, 아직 한 줄기의 명예와 신의가 그대의 몸속에 남아 있다면, 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그녀는 그대의 여동생이오! 오, 맙소사, 사랑의 고통을 결코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는군!”

그가 죽음에 이르러 몸을 비틀거릴 때, 모든 꽃이 그의 피로 붉어졌다.


☑ 지은이 소개

프란츠 퓌만(Franz Fühmann, 1922∼1984)

에세이스트, 아동문학 작가, 고전문학의 개작자로 활동했다. 당시의 동독(DDR) 지역이었던 로흘리츠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국가사회주의(나치)의 이념 교육을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사회주의의 추종자가 되었다.

작품 활동 외에도 문화정치적인 영역에도 활발히 관여하면서 당시 동독의 정치적 횡포와 억압에 시달리는 젊은 작가들을 고무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동독의 작가로 출발한 그는 독일의 전후문학에서 비중 있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창작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하인리히 만 상(1956)과 숄 오누이 상(1982) 그리고 독일 비평가 상(1977)을 받았다.

1960년대부터는 소설, 에세이, 단편 작품 그리고 시와 더불어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작품 활동을 주로 해 왔다. 아동문학으로 ≪이상한 새를 찾아서≫(1960), ≪재밌는 동물−ABC≫(1962) 그리고 유고작으로 ≪절름발이 마녀 안나≫(2002), ≪요정에 관한 것≫(2004), ≪여름밤의 꿈≫(2007) 등등이 있다.

특히 그는 세계 고전문학들을 개작해 고전문학의 소재, 전설과 신화 등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재현해 내는 등 청소년 문학에 대한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다. 트로야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목마≫(1968), 거인족을 정복하는 ≪프로메테우스≫(1974)와 호머의 ≪오디세우스≫(1968) 등 전설과 신화적인 작품들을 청소년 문학으로 개작했다.

그중 하나가 ≪니벨룽겐의 노래≫(1971)다. 이 작품에서 남성들의 용기, 여인들의 아름다움, 사랑과 죽음, 신의와 배반 등 인간 사회가 지닌 영원한 화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 옮긴이 소개

박신자

성신여자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철학부를 졸업하고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외국어대학교, 백석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사회 교육원에 출강했으며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한다. 주요 논문으로는 <문학적 아르누보>, <인상주의 문학의 가능성과 그 실례>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로버트 발저의 ≪프리츠 콕의 작문 시간≫, 저서로는 ≪문학과 미술의 대화≫, ≪다채로운 세상, 움직이는 문화≫ 등이 있다.


☑ 목차

1. 보름스의 성에서 크림힐트는 어떻게 성장했는가

2. 크산텐의 성에서 지크프리트는 어떻게 성장했는가

3. 지크프리트는 보름스에 어떻게 가게 되었는가

4. 지크프리트는 작센군과 어떻게 전투를 치렀는가

5. 지크프리트는 크림힐트를 어떻게 처음 보게 되었는가

6. 군터 왕이 어떻게 이슬란트의 브륀힐트 여왕에게 갔는가

7. 군터는 브륀힐트에게 어떻게 구혼했는가

8. 지크프리트가 그의 신하들에게 어떻게 갔는가

9. 지크프리트가 어떻게 사신으로 보름스에 보내졌는가

10. 브륀힐트는 보름스에서 어떻게 영접받았는가

11. 지크프리트는 부인과 함께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갔는가

12. 군터 왕이 지크프리트를 궁정 잔치에 어떻게 초대했는가

13. 지크프리트는 아내와 궁정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어떻게 여행했는가

14. 왕비들이 서로를 어떻게 모욕했는가

15. 지크프리트가 어떻게 배반당했는가

16. 지크프리트가 어떻게 살해당했는가

17. 지크프리트가 애도 속에 어떻게 장사되었는가

18. 지그문트 왕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가

19. 니벨룽겐의 보물이 어떻게 보름스로 옮겨지게 되었는가

20. 에첼 왕이 부르군트의 크림힐트에게 어떻게 구혼했는가

21. 크림힐트가 어떻게 훈 나라로 떠났는가

22. 크림힐트가 에첼에게 어떻게 영접을 받았는가

23. 크림힐트가 오빠들을 어떻게 하지 축제에 초대했는가

24. 베르벨과 슈베멜은 왕비의 전갈을 어떻게 전했는가

25. 니벨룽겐족이 훈 나라로 어떻게 여행했는가

26. 겔프파르트는 당크바르트에게 어떻게 살해되었는가

27. 니벨룽겐족이 푀흘라른으로 어떻게 여행했는가

28. 부르군트족이 훈 나라 사람들과 어떻게 만났는가

29. 크림힐트가 여왕 앞에서 일어서지 않는 하겐을 어떻게 책망했는가

30. 하겐과 폴커가 어떻게 파수꾼이 되었는가

31. 사람들이 예배에 어떻게 참석했는가

32. 당크바르트가 블뢰델을 어떻게 살해했는가

33. 부르군트족은 훈족과 어떻게 싸웠는가

34. 죽은 사람들이 회당 밖으로 어떻게 내던져졌는가

35. 이링이 어떻게 살해되었는가

36. 왕비는 회당에 어떻게 불을 지르게 했는가

37. 뤼디거가 어떻게 살해되었는가

38. 디트리히가 모든 전사들을 어떻게 참살했는가

39. 디트리히가 군터와 하겐과 맞서 어떻게 싸웠는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모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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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나이
에른스트 호프만 지음 /  권혁준 옮김
분야 : 독일 소설
출간일 : 2011년 11월 7일
ISBN : 978-89-6406-980-6
13,000원 /  A5 제본 / 122쪽


☑ 200자 핵심 요약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으로 더 잘 알려진 <호두까기 인형>의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의 대표작이다. 호프만은 <모래 사나이>를 통해 인간의 심연 깊숙이 자리한 환상과 몽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빈틈없이 짜인 이야기 구조 속에 현실과 환상, 초자연적인 것이 뒤섞이고 광기와 눈의 모티브, 자동인형 등 이색적인 소재가 등장한다. 인간의 분열된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는 그의 이야기는 당혹스럽고, 괴기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 책 소개

≪모래 사나이(Der Sandmann)≫는 독일 낭만주의 시기의 대표적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며 후기 낭만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사회사적, 정신분석학적 방법론 등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는 작품이다. 노벨레적 요소와 동화적 요소, 현실적인 것과 환상적·초자연적인 것이 뒤섞여 있을 뿐 아니라 광기와 눈의 모티브, 자동인형 등 이색적인 소재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여러 시점에서 전개되는 등 ‘현대적’ 서사 전략이 동원되고 있어 하나의 고정된 시각으로 작품 전체를 조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호프만의 기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1815년 11월에 완성되었고, 1816년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노벨레 작품집 ≪밤의 풍경들(Nachtstücke)≫을 열어주는 첫 번째 이야기로 실렸다. ‘밤의 풍경’이란 원래 16세기 회화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달빛이나 횃불, 촛불로 불완전하게 조명된 대상에서 명암이 날카롭게 대비되어 독특한 색채를 띠며 낯설고 불안한 효과를 자아내는 그림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 개념은 18세기부터는 문학에 전용되어 유령이나 강도 등 범죄자들이 등장하는 무서운 이야기들, 나아가 기괴하고 무서운 사건이나 현상들의 배후에 있으며 인간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불가해한 어두운 힘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뜻하게 되었다. ≪밤의 풍경들≫에는 이런 성격의 작품들이 모두 여덟 편 실려 있다

≪모래 사나이≫에서는 ‘광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대학생 나타나엘이 어린 시절의 끔찍한 체험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차 광기에 사로잡혀 파멸해 가는 것이 전체 줄거리다. 꿈과 환상, 광기나 최면술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험들은 독일에서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웠던 계몽주의 시기에는 금기시되고 배척되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세계가 가져온 답답한 현실에서 심한 소외를 느끼게 되자 예술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내적인 자유를 추구했던 낭만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문학적 소재가 되었다. 즉 낭만주의 문학에서는 환상적인 세계가 일상의 세계와 통합되며,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험들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그리고 초자연적 요소가 풍부한 낭만주의 초기의 환상적 이야기들은 차츰 세계의 마성적인 힘, 인간 내면에서 파멸을 가져오는 어둡고 기이한 정신적인 과정, 사악한 충동, 광기, 불안, 경악을 소재로 하는 ‘공포 낭만주의’로 나아간다. 아울러 낭만주의 시대에는 의학과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광기와 같은 인간 정신의 ‘밤의 측면들’에 주목하는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광기는 인간의 오성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었고 정상과 광기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는 것은 불가능한 현상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광기는 1800년대에 문학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모래 사나이≫는 바로 ‘광기’에 대한 당대의 이러한 담론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광기’나 주인공의 정신적 외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광기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시점에서 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 책 속으로

Alles, das gnaze Leben war ihm Traum und Ahnung geworden; immer sprach er davon, wie jeder Mensch sich frei wähnend, nur dunklen Mächten zum grausamen Spiel diene, vergeblich lehne man sich dagegen auf, demütig müsse man sich dem fügen, was das Schicksal verhängt habe.

모든 것이, 삶 전체가 그에게는 꿈과 예감이 되어버렸다. 그는 이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공상을 하는 것이 사실은 단지 저 어두운 힘들이 벌이는 잔인한 유희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에 저항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정해져 있는 운명에 겸허히 순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은이 소개

에른스트 호프만 Ernst T. A. Hoffmann(독일, 1776~1822)
호프만은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다. 호프만은 법률가로 활동하면서 문학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예술적 재능을 보여주었던, 낭만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의 종합을 실천한 예술가였다. 그는 유능한 법률가라는 시민적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작곡가, 음악비평가, 극장의 음악장, 캐리커처 화가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다. 작가로서는 출발이 늦었던 그는 먼저 음악가로서 소명을 느끼고 음악을 무척 사랑하였으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흠모하여 자신의 원래 이름 에른스트 테오도르 빌헬름 호프만(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에서 빌헬름을 아마데우스로 바꾸기도 했다. 또 작곡가로서 많은 성악곡과 기악곡, 오페라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작가로서 현실과 꿈·환상이 뒤섞인 것, 광기, 초자연적인 것을 소재로 한 환상적인 작품들을 통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문학작품들은 평일에는 ‘낮의 세계’에서 법관으로 활동하고 밤이나 주말에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이중생활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은 당시의 낭만주의 사조와도 관계가 깊다.


☑ 옮긴이 소개

권혁준
권혁준은 서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쾰른에서 독문학, 영문학, 철학을 전공한 후 프란츠 카프카 연구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한양대, 성신여대에서 근현대 독문학, 독일문화 및 유럽문화, 독일영화사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헤닝 만켈의 범죄추리소설 ≪다섯 번째 여자≫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


☑ 목차

모래 사나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2년 7월 4일 수요일

유대인의 너도밤나무(Die Judenbu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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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드로스테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세계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해준 작품이다. 드로스테는 이 작품에서 철저한 사실주의적 문체, 낭만적이고 초월적인 환경과 분위기 묘사를 통하여, 당시 사회의 모순된 환경과 악한 인간 본성이 빚어내는 죄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파멸을 묘사한다.
 
 
☑ 출판사 책 소개 

이 소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한다. 드로스테의 외조부는 오늘나의 베스트팔렌지방 북부에 영지를 소유한 대지주였다. 1783년 2월에 그의 소유지에서 벨레르젠 출신의 하인 헤르만 게오르크 빙켈하겐이, 빚 독촉을 했다는 이유로 한 유대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 살인자는 고향을 떠나 알제리로 가서 노예가 되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후 노예 상태에서 풀려난 그는 자신의 범행 장소로 되돌아와 그곳에서 죽었다. 드로스테의 외삼촌은 1818년에 이 사건을 <<어느 알제리 노예의 이야이(Geschichte eines Algierer Sklaven)>> 하는 제목의 기록소설 형식으로 엮어 괴팅겐에서 발행하는 잡지 <<마술 지팡이(Die Wünchelrethe)>>  에 발표한 바 있다. 드로스테는 외가에 머물면서 이 유대인 살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삼촌이 쓴 소설을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 그녀는 대단한 의욕을 가지고 이 사건을 작품화하는 일에 착수한다.
처음에 제목을 <<범죄소설, 프리드리히 메르겔(Kriminalgeschichte, Friedrich Mergel)≫로 정하고 그동안의 예비 작업을 토대로 집필에 몰두하던 드로스테는, 산림관과 프리드리히가 운명적으로 만나는 장면까지 쓰고는 집필을 중단한다. 그 후 1839년 여름에 드로스테는 이 소설의 실제 무대인 벨레르젠 근교에 체류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 지방의 불법적 상황이 거의 반세기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다시 집필에 몰두해 1840년 초에 잠정적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베스트팔렌의 풍경과 민속을 내용으로 하는 광범위한 연작소설을 계획하고 있던 드로스테는, 이 소설도 ≪베스트팔렌 산악 지방의 풍속화(Ein Sittengemälde aus dem gebirgigten Westphalen)≫로 제목을 바꾸어 그것에 편입시키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계획을 변경하여 쉬킹의 주선으로 1842년 4월 22일부터 5월 10일까지 16회에 걸쳐 ≪교양 있는 독자를 위한 조간신문(Morgenblatt für die gebildeten Leser)≫에 ≪유대인의 너도밤나무(Die Judenbuche)≫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맨 처음 단순한 범죄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드로스테는 , 글쓰기가 진행됨에 따라 범죄의 무대가 된 지방의 환결과 풍속, 마침내는 한 사람을 끔찍한 범죄자로 만드는 사회 환경을 묘사하고자 했다. 그리고 베스트팔렌 산악 지방의 한 마을을 예로 설정해 당시 독일 산악 지방의 표본을 묘사하며, 사회에서 집단의 편견이 인간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려 했다. 이 소설에서는 네 번의 죽음이 묘사되고 있는데 모두 집단의 편견이라는 횡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 프리드리히 메르겔도 이 횡포의 희생자가 되어 파멸한다.
 이 책은 1989년 뮌헨의 빙클러 출판사(Winkler Verlag)에서 출간한 판본을 텍스트로 삼아 완역하였다.
 
 
☑ 책 속으로
 
밝은 공간에서 태어나 보호받고,
경건한 손에 길러진 그대 복된 자여,
저울질하지 마라, 결코 그대에게 허락되지 않았느니!
돌을 내려놔라. 그 돌이 그대 자신의 머리를 맞힐 테니!
 
 
 
☑ 지은이 소개
 
아네테 폰 드로스테휠스호프(Annette von Droste-Hülshoff, 1797∼1848)
아네테 폰 드로스테휠스호프는 1797년 1월 12일 독일 뮌스터 근교의 수성(水城) 휠스호프에서 남작의 딸로 태어났다. 활동적이며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문학적 재능을, 온유하고 학구적인 아버지로부터 음악적 재능과 자연과학에 대한 탐구열을 물려받았다.
드로스테는 대략 일곱 살부터 문학적 재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청년기까지 그녀가 쓴 시들은 가족을 위한 즉흥시가 대부분이었다. 1813년 드로스테와 언니는 뵈켄도르프의 외가에서 그림 형제들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그들과 함께 독일 동화와 민요 수집을 하게 된다. 그러한 활동을 통하여 민속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인간적으로도 시야가 넓어지게 된다.
1818년 신앙심이 깊은 외조모와 삼촌의 권유로 찬송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잘못된 처신으로 두 남자에게 공동의 절교장을 받는 사건 때문에 중단된다. 불안과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던 그녀는 쓰고 있던 신앙 시를 중단하고 ≪신앙연력(信仰年歷, Geistliches Jahr)≫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1820년 가을에 어머니께 헌정한다. 이른바 ‘청춘의 파국’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여파로 드로스테는 1820년부터 1825년까지 별다른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암흑의 세월은 드로스테에게 자신의 실존을 각성하게 하는 시기가 되며,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작가로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1825년에 가족 및 친지들과 떠난 여행은 드로스테의 정신세계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쾰른에서 알게 된 아델레 쇼펜하우어와의 친교는 드로스테의 정신적·문학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여행에서 돌아온 드로스테는 1826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처음 몇 년 동안 고독한 생활과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인해 그녀는 육체적·정신적으로 더없이 허약해진다. 더욱이 연이은 막내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신경쇠약과 발작을 일으키며 극도로 고독해진다. 하지만 그녀는 농사일을 관찰하면서 농사에 대한 세부 사항과 지질에 대한 지식을 더욱 넓혀간다. 이 시기에 그녀는 이미 시작해 놓은 소설 ≪유대인의 너도밤나무(Die Judenbuche)≫를 집필했고, 또한 역사에 눈을 돌려 세 편의 서사시 ≪성(聖) 베른하르트의 순례자 숙소(Das Hospiz auf dem großen St. Bernhard)≫(1827), ≪의사의 유언(Des Arztes Vermächtniß)≫(1832), ≪론 늪지의 전투(Die Schlacht im Loener Bruch)≫(1837)를 집필했다. 1833부터 1840년까지 드로스테는 뮌스터 아카데미 철학 강사인 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 슐뤼터(1801∼1884)와 친교를 맺게 된다. 슐뤼터는 드로스테의 신앙 시를 높이 평가해 중단된 ≪신앙연력≫을 완성하라고 촉구했고, 이 충고에 따라 드로스테는 이 연작 신앙 시를 다시 시작하여 1840년에 완성한다.
1838년에 드디어 첫 번째 시집 ≪시집(Gedichte)≫을 냈지만, 독자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드로스테는 이에 굴하지 않고 ‘헤켄 작가협회(Hecken Schriftsteller- Gesellschaft)’의 회원이 되어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드로스테는 베스트팔렌 전설과 역사를 소재로 한 아름답고 소름 끼치는 여러 편의 발라드를 쓰게 된다. 1841년 초에 시작한 ≪우리네 시골에서는(Bei uns zu Lande auf dem Lande)≫도 그중 하나였다.
베스트팔렌에서 구전되는 무시무시한 귀신이야기와 형상들, 색채와 냄새, 그리고 무서운 사건들이 대표적 서정시 ≪황야화첩(Die Heidebilder)≫에서 표현된다. 이 책은 드로스테의 발전된 묘사 감각이 낳은 결실이며 사실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녀의 명확한 시대 인식을 담고 있는 ≪시대화첩(Zeitbilder)≫에서 드로스테는 이른바 ‘세계 개선자들’의 돌진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인류의 현실을 직시한다. 그와 함께 ≪신앙연력≫ 2부에서 보였던 작가의 사명에 대한 자각이 심화된다.
1844년 9월 14일에 출판된 두 번째 ≪시집(Gedichte)≫이 첫 시집의 실패를 만회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집으로 드로스테는 작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명성을 얻는다. 드로스테는 색과 빛에 대한 감수성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고, 그 결실로 사실주의적 정확성과 정직성이 돋보이는, 그녀의 시들 중 가장 아름다운 시들을 쓰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그녀는 그 시대의 몰락상을 보며,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확고히 한다.
1844년 9월에 고향으로 돌아온 뒤 건강이 상당히 나빠졌지만, 이러한 고통을 견디며 ≪쾰른 신문≫에 자신의 진솔한 삶의 보고인 시들을 발표하는데, 파멸과 몰락의 그림자가 이 시기의 시들을 지배하고 있다.
1846년에 자신의 신뢰와 애정을 배반한 쉬킹과 완전히 절교한 드로스테는, 그렇게도 사랑했던 고향 베스트팔렌을 떠나 다시 메르스부르크로 갔고, 1848년 5월 24일 마침내 언니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1851년에 ≪신앙연력≫이 출판되었고, 1860년에 쉬킹에 의해 ≪마지막 선물(Letzte Gaben)≫이 출판되었으며, 1878∼1879년에는 3권으로 된 ≪드로스테휠스호프 전집≫이 세상에 나왔다.
 
 
☑ 옮긴이 소개
 
조봉애
조봉애는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인간의 죄성(罪性)과 작가의 사명: 아네테 폰 드로스테휠스호프 연구>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번역 활동을 하고 있으며, 꿈땅 어린이 도서관에서 도서관장으로 지내고 있다.
 
 
☑ 목차
 
유대인의 너도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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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4일 목요일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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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토마스 만의 형으로 유명한 하인리히 만(1871~1950)이 유미주의에서 벗어나 사회 비판적, 참여문학적 입장에서 쓴 풍자소설(1905)이다. 운라트(독일어로 오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김나지움 교사 라트 선생이 로자 프뢸리히라는 여가수를 만나 파멸해 가는 과정에서 독일 시민사회 역시 타락했음을 고발하는 이야기로, 토마스 만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하인리히 만의 대표작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1905)은 하인리히 만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유미주의를 탈피하고 시대적 상황에 대한 사회 비판적, 참여문학적 입장을 확립한 풍자소설이다. 이 소설의 제목에서는 한 개인의 이름이 언급되고, 그 인물의 운명이 짧게 암시된다. ‘운라트 선생’은 주인공의 본래 이름이 아니라, 김나지움 교사 라트 박사를 여러 해 전부터 조롱하며 부르는 별명이다. 독자는 첫 페이지에서 학교 풍자의 중심에 이 교사가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군 같은 고루한 김나지움 교사 라트 선생이 그가 몹시 미워하는 학생들을 추적하다가 여가수 로자 프뢸리히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반하며, 그 일로 인해 사회적 지위를 잃고 파멸하는 과정이 풍자적으로 그려진다.

이 소설은 단순한 학교 풍자 이상이다. 충복적인 성향이 특징인 빌헬름 제국 시대(1871∼1918)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소설이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빌헬름 제국 시대의 독일 교양 시민에 대한 희화화를 보았다. 시민사회의 구조와 원칙 및 실상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사회소설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권위적인 교사와 개방적인 여배우 두 사람을 연결하고, 그들의 역할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인물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비판할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을 과장스럽게 묘사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풍자소설로도 볼 수 있다.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은 하인리히 만의 고향 뤼베크에서는 뤼베크 시민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사실상 금서가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번역본이 나오고,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Josef von Sternberg) 감독이 <푸른 천사(Der Blaue Engel)>(1931)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한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 책 속으로

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심지어는 이런 평민들 속에서 조롱을 받으며 배회했다. 그러나 자의식에 따르면, 그는 지배하는 쪽에 속했다. 어떤 은행가도, 어떤 군주도 운라트보다 더 영향력 있게 권력에 관여하지 못했고, 기존의 것을 수호하는 데 운라트보다 더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는 모든 권력자들을 위해 열성을 다하면서도, 은밀한 서재에서는 노동자들에 대해 격분했다. 노동자들이 목표를 달성하면, 운라트의 보수도 좀 더 올라가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용감하게 속마음을 드러내 말했을 때, 젊은 보조 교사들은 그보다 훨씬 더 소심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보조 교사들에게 현대적 정신에 불행하게 중독되어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침울하게 경고했다. 그가 몹시 원한 것은 영향력 있는 교회, 단단한 칼, 엄격한 복종, 완고한 예절 등이었다.


☑ 지은이 소개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 1871∼1950)

하인리히 만은 1871년 3월 27일 상인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Thomas Johann Heinrich Mann)과 부인 율리아(Julia)의 장남으로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제 및 재정 담당 시의원이었던 부친 덕분에 유복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한다. 9년제 김나지움인 카타리네움(Katharineum)을 8학년 때인 1889년에 그만둔 후, 드레스덴의 한 서점에서 약 1년간 수습 생활을 한다. 그 후에는 베를린 소재 피셔 출판사(S. Fischer Verlag)에서 수습을 하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에서 공부를 병행한다.

그는 1894년에 첫 소설 ≪어느 가정에서(In einer Familie)≫를 출간하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고, 이듬해에는 보수적인 성향의 월간지 ≪20세기(Das Zwanzigste Jahrhundert. Blätter für deutsche Art und Wohlfahrt)≫(1895∼1896)도 발행한다.

1900년에는 소설 ≪게으름뱅이 나라에서(Im Schlaraffen -land. Ein Roman unter freien Leuten)≫를 출간하고, 대단히 창조적인 시기였던 1903년에는 ≪여신들(Die Gö̈ttinnen oder die drei Romane der Herzogin von Assy)≫과 ≪사랑 추적(Die Jagd nach Liebe)≫을 출간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인리히 만은 유미주의적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다. 예술에서는 오직 아름다운 것의 형성만이 중요하다는 입장이 강했다.

그 이후 하인리히 만의 문학관에 변화가 생긴다. 소설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1905)에서 유미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의 개선을 염두에 두는 참여문학론의 색채가 드러난다. 이제는 사회적 또는 정치적 현실의 형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보다 중요해진다. 참여문학의 본보기라 할 수 있는 소설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을 기점으로 그는 중요한 시대적 문제들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한다. 소설이 사회적 폐해를 들추어내고, 그럼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미래의 형성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견해를 갖게 된 것이다.

1912년부터 하인리히 만은 빌헬름 제국 시대의 신흥 부르주아지를 비판적으로 다룬 소설 ≪충복(Der Untertan)≫의 집필에 매달린다. 이 소설은 잡지 ≪짐플리치시무스(Simplicissimus)≫에 부분 발표된 후, 잡지 ≪그림 속 시대(Zeit im Bild)≫에 연재되던 중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연재가 중단된다. 전쟁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출간되어 특별한 주목을 받게 된 소설 ≪충복≫은 노동자 계층을 묘사한 ≪가난한 사람들(Die Armen)≫(1917), 관료 정치와 외교의 수뇌부를 비판적으로 다룬 ≪머리(Der Kopf)≫(1925)와 함께 빌헬름 2세 시대의 독일 사회를 묘사한 제국 3부작을 이룬다.

1915년에 출간된 에세이 ≪졸라(Zola)≫에서 하인리히 만은 독일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전쟁에 열광하는 모습과, 동생 토마스 만의 전쟁을 지지하는 태도에 저항한다. 이런 세계관 갈등으로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의 형제 관계는 단절되었다가 1922년에야 화해가 이루어진다.

하인리히 만은 1928년부터 베를린에 살면서 공산주의자들과 가까워지고 정치적 활동에 참여한다. 그는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등과 함께 독일공산당(KPD)과 독일사회당(SPD)이 국가사회주의자들에 맞서 일치단결할 것을 요청하는 호소문에 서명한다. 1931년에는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 시문학 분과의 의장이 되지만, 1933년에 정치적 활동을 이유로 제명당하고 제국의회 방화 사건 직전에 프랑스로 도피한다.

망명 중에 독일인민전선 준비 위원회 의장뿐만 아니라 사민당의 명예 총재로 선출된 하인리히 만은 역사소설 ≪앙리 4세의 청년기(Die Jugend des Königs Henri Quatre)≫(1935)와 ≪앙리 4세의 완성(Die Vollendung des Königs Henri Quatre)≫(1938)을 출간하고,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한다.

미국에서 회상록 ≪한 시대가 고찰되다(Ein Zeitalter wird besichtigt)≫(1945)를 출간한 그는 1949년에 동독의 예술 및 문학 분야 1급 훈장을 수여받고, 1950년에는 동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초대 회장으로 초빙된다.

그러나 1950년 3월 12일, 하인리히 만은 동독으로의 귀환을 앞두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에서 사망하고, 1961년에 유골만 동베를린으로 돌아간다.


☑ 옮긴이 소개

모명숙

모명숙은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뮌스터에서 수학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논문 <하인리히 만의 소설 ≪머리≫에 나타난 지성인 문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강사와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문학대학 강사를 지냈고, 현재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 ≪한낮의 여자≫, ≪렘브란트 마지막 그림의 비밀≫, ≪요헨의 선택≫, ≪운명≫, ≪지구의 미래≫, ≪사랑받지 않을 용기≫, ≪이성의 섬≫, ≪미술의 순간≫, ≪아인슈타인의 그림자≫등이 있다.


☑ 목차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2년 5월 23일 수요일

마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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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마의 산(Der Zauberberg)
지은이 :  토마스 만(Thomas Mann)
옮긴이 : 윤순식
분야 : 독일 소설
출간일 : 2012년 5월 9일
ISBN : 978-89-6680-346-0 00850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무선제본    쪽 : 134쪽




☑ 책 소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이 작품은 폐렴으로 요양원에서 치료 중이던 그의 아내를 문병하러 간 3주간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생과 예술, 삶과 정신 등과 같이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 본질인 이원성을 탐구하고 있다. 또 그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리얼리즘 이상의 리얼리즘’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토마스 만의 말을 빌리면, 폐렴 증세로 다보스 요양원에서 치료 중이던 그의 아내를 문병하러 간 3주 정도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1912년,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토마스 만은 단편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대한 유머러스한 상관물, 분량에서도 비슷한 정도의 상관물로서 ≪마의 산≫을 구상했다. 그러나 집필 기간(1913∼1924년) 중에 일어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갖가지 명상으로 가득한 방대한 장편소설로 발전하게 되었다. 전통의 단절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팽배하고 있던 세기말의 암울한 ‘데카당스’적 분위기에서 청년기를 보낸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에서는 예외 없이 삶과 죽음의 갈등, 몰락의 과정 등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의 형 하인리히 만과 후기 시민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의 차이로 빚어진 소위 ‘형제 논쟁’에서 토마스 만은 ≪한 비정치인의 고찰≫에서 분명히 보수적·국수적 입장을 취했고, 민주적·현실참여적 입장을 취한 그의 형을 ‘문명문사’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이 상당한 변화를 겪은 후인 1924년, 그의 나이 49세에 출간된 ≪마의 산≫은 그래서 그의 작가적 도정에서 하나의 큰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마의 산≫은 해석의 관점에 따라 교양소설, 시대소설, 시간소설, 성년입문소설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 여러 가지 양상들이 바로 토마스 만의 아이러니다.

이 작품은 특히 사회와의 관계가 중요한 계기를 갖는 독일의 전통적 교양소설과 아이러니적 관계를 지닌다.

주인공이 이상을 향해 단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금술적 승화 작용을 통해 죽음에서 삶으로의 극복을 가져온다. 그래서 ≪마의 산≫에서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종국적으로 이끌어낸 휴머니즘적 비전도 곧 전쟁이라는 현실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주인공의 내적 자아와 사회적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間隙)의 심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지의 호화스런 요양원에는 1차 세계대전 전 유럽의 자본주의적 사회가 반영되어 있으며, ≪마의 산≫은 전전(戰前) 사회를 비판하는 전경(前景)을 지니고 있는 소설이다. 또한 소설의 줄거리는 1907년에서 1914년까지의 기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의 문제성은 이미 그 이후의 시대정신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호화로운 요양원에서의 대화와 그 밖의 모든 성찰들은 전후 유럽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선회한다. 작품은 전통소설, 나아가 꼼꼼한 리얼리즘 소설의 인상을 풍긴다.

≪마의 산≫은 초기의 대립적 인생관을 극복해 대립에 지배당하지 않고, 역으로 대립을 지배하고 전진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적인 생활방식이라는 사상을 제기한 토마스 만의 사상 전환에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독일의 낭만주의적인 보수주의에 대한 결별의 책이 되었다.

1974년 피셔 출판사에서 발간한 13권짜리 전집을 원전으로 삼았다. 정확히 998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마의 산≫에 대한 편역 원칙은 다음과 같이 했다. 첫째, 작품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을 발췌해 전체적 내용에 어울리게 번역했다. 둘째, ≪마의 산≫의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 6장의 ‘눈’의 장면은 대부분 원문의 의미를 그대로 살렸다. 셋째, 기존의 우리말 번역본도 참고해 전체적으로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애썼으나 토마스 만 특유의 만연체로 인해 너무 길어진 문장은 역자 나름대로 나누기도 하고 줄 바꾸기도 했음을 미리 밝힌다.


☑ 책 속으로

Der Mensch soll um der Güte und Liebe willen dem Tode keine Herrschaft einräumen über seine Gedanken. Und damit wach’ ich auf!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다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자, 이제 눈을 뜨자!


☑ 지은이 소개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

19세기에 창작 활동을 시작한 토마스 만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민적 작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 동시대 사회의 위대한 교사였다. 또한 그 발전에 있어서 독일 낭만주의의 극복과 독일 휴머니즘의 부활을 추구해 20세기 문학에 큰 획을 그었다.

독일 고전주의의 괴테에 비견되는 20세기 독일문학의 대표주자인 토마스 만은 1875년 6월 독일 북부의 한자동맹 소속 도시 뤼베크의 부유한 집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세계적인 작가 하인리히 만이 바로 그의 형이다), 1955년 8월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서 타계했다. 뤼베크의 참정의원을 지낸 아버지로부터는 냉철한 사고와 도덕적인 기질을 이어받았고, 독일인과 브라질인의 혼혈인 어머니로부터는 감각적이고 분방한 예술가 기질을 물려받았다. 이것이 바로 ‘시민성’과 ‘예술성’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이원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족은 뮌헨으로 이주했다. 토마스 만은 여기서 잠시 보험회사 견습사원으로 지내다가 뮌헨 대학에서 청강하면서 문학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청년 시절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였다.

그리고 토마스 만이 문학 활동을 시작한 1890년대 중엽에 자연주의는 이미 위기에 빠졌고, 반합리주의적 문예사조인 신낭만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데카당스’라는 말로 집약되는 토마스 만 초기의 예술적 경향에는 예외 없이 삶과 죽음의 문제가 드러난다.

1894년 3월 토마스 만의 학창 시절은 끝났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포기하고 가족이 있는 예술의 도시 뮌헨으로 이주하게 되며 ‘죽음’의 세계라고 표현한 바 있는 ‘문학’의 세계에 마침내 발을 들여놓게 된다(토마스 만은 그 후 40년 가까이 뮌헨에서 살았다). 토마스 만은 몇 년 뒤인 1901년 2월 13일 형 하인리히 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문학은 죽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또한 작품 <토니오 크뢰거>에도 “문학은 결코 천직(天職)이 아니라 저주다”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그해 1894년 최초의 단편 <타락>을 <사회>지(誌)에 발표한다.

1895년 7월 토마스 만은 당시 형 하인리히 만이 체류하던 이탈리아로 최초의 외국여행을 시도했다. 10월에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뮌헨 공과대학에서 역사, 미술사, 문학사 등을 청강하며 1년 뒤인 1896년 말 <짐플리치시무스>지(誌)에 실린 단편 <행복에의 의지>를 탈고했다.

1896년 10월 토마스 만은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는데, 우선 베니스에 들른 후 로마를 거쳐 나폴리를 여행했고 마지막에 로마에서 형 하인리히와 재회했다. 이때 토마스 만은 베를린의 피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한 잡지에 단편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보냈다. 잡지사에서는 그 소설을 수락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관하고 있는 다른 소설들 모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토마스 만은 <환멸>, <어릿광대>, <토비아스 민더니켈> 등의 작품을 보내주었는데, 출판인 사무엘 피셔는 이 소설들에 무척 만족해했고 이제는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토마스 만에게 권유했다. 그래서 토마스 만은 최초의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쓰기 시작했다.

1900년 토마스 만은 1년 만기 지원병으로 육군에 입대하지만 행군 도중에 발가락에 생긴 건초염으로 입대 3개월 만에 제대하게 된다. 이듬해 1901년 10월 ‘한 가문의 몰락’이라는 부제가 붙은 두 권짜리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초판이 나왔다.

1903년 토니오라는 한 혼혈아를 통해 시민사회의 아웃사이더로서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예술가의 숙명을 그린 단편 <토니오 크뢰거>를 발표하고, 비슷한 시기에 그 주제 역시 시민성과 예술성의 또 다른 변주에 불과한 <트리스탄>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아이러니 수법이 특히 잘 드러나 있는 대표적 단편이다.

1905년 2월에 뮌헨 대학 수학 교수인 프링스하임의 딸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하고, 그해 11월에 장녀 에리카 만이 출생한다. 1909년에는 독일의 어느 소공국을 무대로 하는 중편 <대공전하>를 발표하여, 고독한 예술가적 존재를 사랑과 결혼에 의하여 삶의 세계와 손을 잡게 한다. 1911년 5월 휴양지에서 존경해 오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거 소식을 접한 것을 경험으로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 발표한다. 이것은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 중 가장 긴 단편소설로서 과거의 작품들과는 달리 피셔 출판사가 아니라 히페리온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1915년 보수적 견해를 피력하는 에세이적 논설문 <프리드리히와 대동맹>을 발표했고, 이어 ≪한 비정치인의 고찰≫의 집필에 들어가 이 작업에 꼬박 2년간 몰두했다. 600쪽이 넘는 대단한 분량의 저작이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프랑스적 민주주의나 문명 개념을 독일의 문화 개념과 대립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방대한 저작 ≪한 비정치인의 고찰≫은 토마스 만의 사상의 한 전환점이자 작가 생활의 요약인 동시에 과거와의 작별이었다.

1922년 소설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어린 시절의 책≫을 출간했고, 보수적 정치관을 지양하는 연설문 <독일 공화국에 대하여>라는 강연을 하면서 독일 청년층에 민주주의의 지지를 호소한다.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화사절 자격으로 국외로 강연 여행을 다니는데, 이때 형 하인리히와의 형제 논쟁이 그 해결점을 찾게 된다. 1924년, 전쟁으로 집필이 중단되었던 대작 ≪마의 산≫이 출간된다.

1926년에 이루어진 토마스 만의 두 번의 여행, 즉 프랑스 수도 파리와 고향 도시 뤼베크로의 여행은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프랑스 지식인 단체는 <인간성의 이념에 근거한 독일의 정신적 경향>에 대한 강연을 위해 토마스 만을 초청했고, 뤼베크에서는 한자동맹 도시의 항구 700주년 기념식에 연사로 그를 초청했던 것이다. 이후 2년 동안 성서적 연작소설에 침잠하면서 구약성서 중의 창세기에서 그 소재를 찾은 4부작 장편소설 ≪요제프과 그 형제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929년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대해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지만,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이 없었으면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듬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비판한 단편 <마리오와 마술사>를 출간하는데,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어떤 우발적 살인사건이 그려진다.

괴테 서거 100주년인 1932년에 즈음하여 토마스 만은 <시민시대의 대표자로서의 괴테>, <작가로서의 괴테>라는 강연을 하면서 인류애의 고귀함을 역설한다. 이듬해 1월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자,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후 국외로 강연 여행을 떠나 그대로 망명한다. 스위스 취리히 호반에 거처를 정한 후, 당분간 정치적 활동을 자제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다른 망명 문학가들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나치 정권에 대한 토마스 만의 첫 공개적 반박은 1935년 4월 니스에서 개최된 ‘지식인연합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유럽이여, 경계하라!>라는 제목으로 그 포문을 열었으며, 연이어 이듬해 6월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인문학과 휴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자유의 살해자에 대한 비판과 강건한 민주주의의 필연성’, 즉 진보에 대한 능동적 옹호가 필연적인 이유를 강도 높게 피력했다.

1933년 이후 4부작 연작소설 ≪요제프과 그 형제들≫의 1, 2, 3부가 각각 <야코프 이야기>, <청년 요제프>, <이집트에서의 요제프>라는 부제로 1∼2년 간격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에 대해 빈과 프라하, 부다페스트 등지의 신문 논평들은 매우 우호적이었지만, 독일의 언론계에서는 기사화하지 않았다. 토마스 만은 이제 마지막 4부를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다른 책을 너무 쓰고 싶어서 그 계획을 당분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 4부는 1943년에 가서야 <부양자 요제프>라는 부제로 출간되었다. 이 4부작 ‘요제프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토마스 만이 순수 집필에 바친 시간은 1926년 12월부터 1943년 1월까지 13년이었다. 물론 괴테를 패러디한 ≪바이마르의 로테≫와 <뒤바뀐 머리>를 쓴 1936년 8월부터 1940년 8월까지가 제외된 기간이다.

토마스 만의 세 개의 대표 소설−즉, 20대 후반에 쓴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50대에 쓴 ≪마의 산≫, 그리고 70대에 접어들면서 완성한 ≪요제프과 그 형제들≫−이 세 소설을 토마스 만은 스스로 평가하면서, 처음 것은 독일 소설이었고, 두 번째는 유럽 소설, 그리고 세 번째는 신화를 토대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인간에 관한 노래라고 말하며, 이것은 보다 풍요롭게 전개되어 간 정신의 성장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어느 한 편지에서 밝힌 바 있다.

1940년에 발표된 <뒤바뀐 머리>는 인도 설화의 패러디로, 인도의 전설을 빌려 삶과 정신과의 조화적 종합이라고 하는 이상 실현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기에 토마스 만은 히틀러 타도를 위해 영국 BBC 라디오 방송에서 제안한 <독일 청취자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4년 6개월 동안 매월 한 번 정도 방송을 하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 정권의 비민주성과 비인간성을 호소한다.

1944년 토마스 만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선거의 참모 역할을 하게 되며 루스벨트는 그해 11월 대통령에 당선된다.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토마스 만은 사방에서 요청해 오는 사회적 의무와 강연으로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그는 아도르노와 토론 및 논의를 계속 진행했는데, 왜냐하면 당시 그는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서의 한 부분, 즉 순수 음악적인 성격의 장을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1947년 초 ≪파우스트 박사≫가 완성된다. 이 작품에서는 1587년의 민중본에서 출발한 파우스트 모티브의 수백 년 전통이 새롭게 파악되고 변형되며 해석된다. 소설은 자서전 형식이며, 독일의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삶의 내용을 기록하는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작곡가의 삶을 서술함과 동시에 음악적 창조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음악에 관한 소설이지만, 20세기의 독일적 상황과의 연관하에서는 독일인들에 관한 소설이다.

1948년 여름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다시 잡고 ≪파우스트 박사의 성립≫이라는 연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소설’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을 그는 단 3개월 만에 탈고했고, 이 연대기는 ≪파우스트 박사≫의 생성 과정 및 계획, 형상화에 대해 보고하는 일기다.

1951년 발표된 ≪선택된 인간≫은 ‘착한 죄인’에 대한 설화의 아이러니적 해석이자 중세에 성립된 오이디푸스 동기의 기독교적 판본의 패러디, 즉 중세문학의 패러디다. 어딘지 모르게 동화의 경계에 있는 듯한 설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토마스 만은 “모든 의미에서 이 ≪선택된 인간≫이 나의 후기작품”이라고 칭한다.

195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기만당한 여인>에서 토마스 만은 다시 ‘삶’과 ‘죽음’ 사이의 복합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끌어내었다. ≪선택된 인간≫의 발표 직후 토마스 만은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다시 집필하기 시작한다. 이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집필 기간이 무려 50년이라는 점과 자서전적인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토마스 만이 남긴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토마스 만의 다른 모든 작품이 주도면밀한 가공에 따라 완결되어 출간된 데 반해, 이 작품은 세 번이나 미완의 단편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1922년 <어린 시절의 책>, 두 번째는 1937년 암스테르담에서 펴낸 확대판, 세 번째는 1954년 <회상의 제 1부>가 그것이다.


☑ 옮긴이 소개

윤순식

윤순식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인문대학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독일어 교수를 지냈고,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박사 후 연수(Post-doc) 과정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현대 독문학을 연구했다.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토마스 만의 소설 ≪마(魔)의 산(山)≫에 나타난 반어성(反語性) 고찰(考察)>, <≪부덴브로크 일가≫에 나타난 아이러니 연구>, <작품 내재적 해석학으로서의 독어독문학>, <현대 독일어권 문학에 나타난 병의 담론>, <독일통일과 유럽통합>, <현대 독일어권 문학에 나타난 병의 담론> 등 다수가 있다.

저서에는 ≪아이러니≫(한국학술정보), ≪토마스 만≫(살림출판사)이 있으며, 역서로는 ≪교양≫(공역), ≪역사의 지배자≫, ≪작약등(芍藥燈)≫, ≪아이 사랑도 기술이다≫ 등 다수가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서문

모리스 영감님

유능한 농부 제르맹

기예트

꼬마 피에르

광야에서

큰 떡갈나무 아래서

저녁 기도

추위를 무릅쓰고

노천(露天)에서

마을의 멋쟁이

주인

노파

귀가

모리스 부인

사랑스런 마리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