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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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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Μακεδονία
기원전 808년~기원전 168년
기원전 150년~기원전 148년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 왕국(주황색)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 왕국(주황색)
수도베르기나
(기원전 808년 ~ 기원전 399년)
펠라
(기원전 399년 ~ 기원전 167년)
정치
정치체제군주제
바실레우스
기원전 808년 ~ 기원전 778년
기원전 336년 ~ 기원전 323년
기원전 179년 ~ 기원전 168년

카라노스(초대)
알렉산드로스 3세
페르세우스(말대)
왕조
기원전 808년 ~ 기원전 310년
기원전 305년 ~ 기원전 277년
기원전 276년 ~ 기원전 167년

아르게아다이 왕조
안티파트로스 왕조
안티고노스 왕조
입법부시네드리온
인문
공용어고대 마케도니아어
아티케 그리스어
코이네 그리스어
데모님마케도니아인
경제
통화테트라드라크몬
종교
종교고대 그리스 종교
헬레니즘 종교
기타
현재 국가Image 그리스
Image 북마케도니아
Image 튀르키예
이전 국가
다음 국가
Image 그리스 암흑기
아탈로스 왕조 Image
셀레우코스 왕조 Image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Image
마케도니아 속주 Image

마케도니아 왕국(그리스어: Μακεδονικό βασίλειο), 약칭 마케도니아(Μακεδονία)는 그리스 반도의 최북방에 있던 고대 왕국으로, 서쪽으로는 에페이로스, 북쪽으로는 파이오니아, 동쪽으로는 트라케(트라키아), 남쪽으로는 테살리아 지방과 접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를 비롯해 인더스강까지 진출하면서, 마케도니아는 짧은 기간 동안 고대 근동에서 헬라스의 강대국이 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리스 역사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된다.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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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Μακεδονία)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낱말 ‘마케드노스’(μακεδνός)와 연관이 있다. 보통 이 낱말은 ‘높은 것’, ‘고지 사람’을 뜻하는 말로, 고대 마케도니아인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1][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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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역사와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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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첫 거점인 아이가이(Αιγαί) 주변은 여러 민족이 살던 곳이었다. 마케도니아는 ‘에마티아’(에마티온 왕의 이름에서 나온 말로 설명되기도 한다)라고 불렸으며, 아이가이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임금의 도읍인 ‘에데사’로 불리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카라노스가 많은 그리스인을 이끌고 새 터전을 찾아[3] 이곳으로 와 에데사에 정착한 뒤, 이곳의 이름을 아이가이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어 카라노스는 미다스와 다른 임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새 왕국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헬렌(Ἕλλην)의 아들 도로스(Δώρος)가 백성을 이끌고 히스타이오티스로 들어왔으나, 카드메이아 사람들에게 핀도스 산맥으로 쫓겨나 정착하면서 마케도니아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 한 갈래가 더 남쪽으로 이주해 도리아 인으로 불리게 되었다.[4]

마케도니아 국가는 처음 기원전 8세기 또는 기원전 7세기 초에 아르고스 왕조가 통치하면서 성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고스 왕조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고스 시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그래서 아르고스 왕조로 불린다).[5] 아르고스 왕조의 통치를 받던 마케도니아인 부족은 아르게아다이 사람(‘아르고스에서 전래한’이라는 뜻으로 설명되기도 한다)으로 불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할리아크몬강악시오스강이 흐르는 비옥한 충적 평야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올륌포스 산 북쪽의 지역은 ‘하부 마케도니아’로 불렸다. 알렉산드로스 1세 시대에 아르게아다이계 마케도니아인들은 륀케스타이, 엘미오타이 등 독립적인 마케도니아 부족이 살던 상부 마케도니아와, 서쪽으로는 악시오스강을 넘어 여러 트라케 부족이 살던 에오르다이아, 보티아이아, 뮈그도니아, 알모피아 등으로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였다.[6] 페르디카스 1세(혹은 그의 아들 아르가이오스 1세일 가능성도 거론된다)가 오늘날 베리아(베로이아) 주변에 도읍 아이가이(오늘날의 베르기나)를 세웠다. 다리우스 1세 시기의 페르시아 제국 지배를 잠시 받은 뒤,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 1세 때 독립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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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31년경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마케도니아.

기나긴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마케도니아는 2류 국가로, 스파르타아테나이를 번갈아 지원하였다.[7]

고대 그리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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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이전에 마케도니아 왕국은 근대 그리스마케도니아 관구에 해당하는 지역 대부분을 아울렀다. 아민타스 3세가 마케도니아 통일 왕국을 이루었으나, 가축이 풍부한 해안 평야 지역과 고립된 부족이 사는 험한 배후 지역이 완전히 융합되지는 못했고, 왕과 혼인 관계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일리리아에서 북쪽과 북서쪽으로 넘어오는 침공로가 되는 산 고개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마케도니아는 점차 아티케화되었는데, 당시 아테나이의 일부 인사들은 마케도니아인을 야만인으로 보기도 했다.[8]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어의 방언을 사용했으나, 남쪽 도시 국가의 많은 이들이 쓰는 그리스어로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서술도 있는데, 이는 마케도니아 사회가 남쪽 사람들의 정치 형태에 기반한 폴리스와 문화와는 다른 형태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제시되기도 한다.[7]

4세기에 마케도니아는 고대 그리스 남쪽 도시 국가들의 정치에 점차 개입하게 되었으나, 마케도니아는 초기의 아이가이(오늘날의 베르기나)와 이후 도읍 펠라의 궁전 문화에서 볼 수 있듯 고졸기의 특징을 견지했으며, 고전기 헬라스 도시 국가보다는 뮈케나이 문화에 더 가깝다는 설명도 있다. 또한 필리포스가 여러 아내를 둔 점을 고졸기의 풍습으로 보는 서술도 있다.

고졸기 문화의 잔재로 마케도니아 왕국이 세습 군주제를 강하게 유지하여 왕이 강력한(때로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점을 들 수 있다. 다만 때때로 토지 귀족들의 견제를 받거나 왕가 내부의 권력 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마케도니아의 군주제는 남쪽 그리스 문화와 크게 대조되었다. 그리스에서는 도시 국가들이 대개 귀족정이나 민주정 체제를 갖추었으며, 사실상 군주인 참주의 경우에도 권력 세습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관습이 아니었다. 스파르타에서 군사 지휘관과 성직자로서 두 세습 군주를 둔 것은 예외적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모두 봉토와 같은 봉건 제도가 있었다는 서술이 있으나, 마케도니아에서는 봉건 제도가 역사 시대까지 지속되었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한다. 반면 그리스에서는 마케도니아가 발흥하기 전부터 이러한 제도가 도시 국가에서 폐지되었다고 설명되며, 대표적 사례로 솔론세이사크테이아 법(σεισάχθεια)이 언급되기도 한다.

아뮌타스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장남 알렉산드로스 2세와 차남 페르디카스 3세는 짧은 기간 동안 통치하였다. 페르디카스 3세의 어린 후계자는 아뮌타스의 셋째 아들 필리포스 2세에게 폐위되었고, 필리포스 2세는 스스로 왕이 되어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지배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리스 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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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임금 필리포스 2세.

필리포스 2세 시대에 마케도니아는 파이오니아인, 트라키아인, 일리리아인의 땅까지 영토를 넓혔다. 또한 펠라고니아와 남부 파이오니아도 병합하였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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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스 2세 사후의 마케도니아 왕국.

필리포스는 전통적인 호플리테스 군대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변화를 주어 마케도니아의 군대를 개혁하였다. 그는 중무장 기병대인 헤타이로이와 경보병대를 신설하였는데, 이들은 기동성이 높고 상황 대응에 유리했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또한 주력 보병대의 경우 창의 길이를 늘리고 방패의 크기를 줄여 공격 능력을 강화하였다.

필리포스는 왕국의 영토를 급속히 넓히기 시작하였다. 그는 북쪽으로 일리리아인 등 비(非)그리스계 종족들을 공격해 북부 국경을 확보하고 전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어 동쪽으로 진출해 에게해 북쪽 해안의 영토를 얻었다. 이 지방의 중요한 도시는 암피폴리스였는데, 트라케의 관문을 장악할 수 있는 도시였고 은광도 가까웠다. 이 지역은 아테나이의 영토였으며 아테나이는 여전히 암피폴리스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여겼다. 아테나이는 떠오르는 마케도니아를 견제하려 했으나 동맹국 전쟁이 일어나면서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필리포스가 군대를 남쪽으로 돌려 테살리아의 상당 지역을 점령했을 때도 이를 막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테살리아를 장악하면서 필리포스는 그리스 중앙의 정치에 보다 가깝게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356년에 제3차 신성 전쟁으로 포키스테바이 및 그 동맹국과 전쟁을 벌였다. 테바이는 마케도니아인을 전쟁에 끌어들였고, 크로코스 평야 전투에서 필리포스는 포키스와 아테나이 동맹국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마케도니아는 주변 동맹 관계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필리포스는 퓌티아 경기의 수장이 되어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정계에서 패권을 다졌다고 서술되기도 한다.

아테나이와 계속 투쟁하면서 필리포스는 뷔잔티온보스포로스 해협을 차지하고자 트라케를 따라 동진해 아테나이에 식량 상당수를 공급하던 흑해 곡물 공급선을 차단하였다. 뷔잔티온 공성전은 실패하였으나, 아테나이는 마케도니아의 발흥이 큰 위협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데모스테네스의 주도로 마케도니아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주요 국가들의 연대가 형성되었고, 도시 국가 가운데 강력한 육군을 보유한 테바이도 이에 동참하였다.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동맹군은 마케도니아와 맞붙었으나 대패하였고, 필리포스와 마케도니아군이 그리스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서술되기도 한다.

마케도니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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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시대 마케도니아 제국의 최대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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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기나에 있는 어느 왕릉의 입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짧은 시간에 그리스의 도시 국가뿐 아니라 이집트를 비롯한 페르시아 제국에 더해 동쪽으로 인도 접경까지 진출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한 땅의 정치 형태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 문화를 퍼뜨렸다. 마케도니아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죽자 곧 여러 헬레니즘 정권으로 갈라졌으나, 정복의 영향은 이어졌으며 헬레니즘 시대를 연 옛 페르시아 제국 서쪽 영토에 세워진 그리스어권 도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디아도코이(후계자) 사이에 분할되면서, 마케도니아는 수년 뒤인 기원전 294년에 안티파트로스 왕조로 넘어갔다.

헬레니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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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파트로스와 아들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를 지배했으나, 기원전 297년에 카산드로스가 죽자 오랫동안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데메트리오스 1세(기원전 294~288년)가 잠시 안정을 회복했으나 다시 내전에 빠졌다.

데메트리오스의 아들 안티고노스 2세는 용병 갈라티아인의 침략을 무찌르고 마케도니아에서 왕가의 위상을 되찾았다. 그는 질서와 번영을 회복하였으나, 여러 그리스 도시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고 한다. 안티고노스는 안티고노스 왕조 하의 안정적인 군주정 체제를 세웠다. 안티고노스 3세는 그리스 지역에서 마케도니아의 패권을 다시 확립하였다고 서술되기도 한다.

헬레니즘 시대에 마케도니아 정권은 다른 헬레니즘 군주 국가에서 도입한 방식과 달리, 고졸기의 왕권 개념을 유지한 후계 국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마케도니아의 임금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이나 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처럼 신격화되지 않았으며, 프로스퀴네시스(προσκύνησις, 페르시아식으로 높은 계급 사람 앞에서 엎드려 예를 표하는 관습)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다른 디아도코이 국가에서처럼 자신들을 신민으로 여기는 분위기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을 허물없이 대했으며, 임금은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 여전히 귀족들과 상의했다고 서술되기도 한다.

로마와 충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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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스 5세 시대의 마케도니아 왕국

필리포스 5세와 아들 페르세우스 시대에 마케도니아 왕국은 새로 떠오르는 강국 로마와 충돌하였다. 기원전 2~1세기에 마케도니아는 로마와 일련의 전쟁을 벌였다. 마케도니아는 기원전 197년에 필리포스 5세가, 기원전 168년에는 페르세우스가 로마에 대패하였다. 마케도니아의 패배로 안티고노스 왕가는 폐위되고 왕국은 분할되었다. 기원전 149년에 ‘가짜 필리포스’ 안드리스코스가 잠시 왕국을 복원했으나, 이듬해 로마에 패배하였고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어 마케도니아 속주가 설치되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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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eorg Autenrieth, A Homeric Dictionary, μακεδνός. Perseus.tufts.edu. 2009년 5월 5일에 확인함.
  2. Johann Baptist Hofmann (1951). Etymologisches Wörterbuch des Griechischen. R. Oldenbourg.
  3. Justin, Epitome of the Philippic History of Pompeius Trogus 7.1.
  4. Herodotus, Histories, 1.56.3.
  5. Herodotus mentions the story when Alexander I was asked to prove his Greek descent in order to participate in the Olympic Games (an athletic event in which only people of Greek origin participated). Alexander proved his (Argead) descent and was allowed to compete by the Hellanodikai: “And that these descendants of Perdiccas are Greeks, as they themselves say, I happen to know myself, and not only so, but I will prove in the succeeding history that they are Greeks. Moreover the Hellanodicai, who manage the games at Olympia, decided that they were so: for when Alexander wished to contend in the games and had descended for this purpose into the arena, the Greeks who were to run against him tried to exclude him, saying that the contest was not for Barbarians to contend in but for Greeks: since however Alexander proved that he was of Argos, he was judged to be a Greek, and when he entered the contest of the foot-race his lot came out with that of the first." (Herodotus, Histories, Book 5: Terpsichore 22)
  6.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The Fourth Century B.C. edited by D. M. Lewis et al.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ISBN 0-521-23348-8, pp. 723-724.
  7. 1 2 Kagan, Donald "Twilight of the Polis." Introduction to Ancient Greek History.
  8. A History of Macedonia by R. Malcolm Errington, Catherine Errington, ISBN 1-56619-519-5, 1994, p. 4.
  9. South East Europe History pages - Map showing Upper and Lower Macedon and the growth of Macedon 4th BC.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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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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