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대첩 (1998년 FIFA 월드컵 예선)
| 도쿄 대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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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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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1997년 9월 28일 | ||||||
| 장소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 도쿄 | ||||||
| 심판 | 사드 카밀 알파들리 (쿠웨이트) | ||||||
| 관중 수 | 56,704 | ||||||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에서 도쿄 대첩(東京 大捷)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B조 3차전 경기를 이르는 용어로,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대한민국이 일본을 2-1로 꺾었다.
배경
[편집]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당시 대한민국은 1997년 1월 박종환의 후임으로 차범근을 감독으로 내정했으며, 1차 예선에서 6조에 속해 태국과 홍콩을 상대로 3승 1무를 거두어 조 1위로 2차 예선에 진출했다. 일본은 가모 슈 감독 체제를 유지하였으며, 1차 예선에서 4조에 속해 오만, 마카오, 네팔을 상대로 5승 1무를 거두어 조 1위로 2차 예선에 진출했다.
2차 예선에서 양 팀 모두 B조에 속하게 되었으며, 3차전에서 양 팀간의 맞대결이 예정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각각 3-0, 2-1 승리를 거두었으며, 일본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6-3 승리를 거둔 뒤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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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하루 전인 1997년 9월 27일 아랍에미리트가 우즈베키스탄에게 3-2로 승리하면서 조 1위로 나섰고, 대한민국은 한 경기 덜 치른 상태에서 조 2위, 일본은 조 3위로 뒤를 잇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승리하게 되면 3전 전승(승점 9점)으로 조 1위를 재탈환하고 1998 프랑스 월드컵 직행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일본이 승리하게 되면 승점 7점으로 아랍에미리트(승점 7점)와 나란히 서며, 승점 6점의 대한민국과 함께 B조는 본격적인 삼파전 양상으로 흘러가게 된다.
경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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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편집]전반 중반 무렵 와그너 로페스가 자신을 마크하던 이민성을 밀어 옐로카드를 받았으며, 7분 뒤 반대로 이민성이 와그너를 마크하다가 옐로카드를 받는 등 여타 한일전과 마찬가지로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고,[1] 전반전은 0-0으로 끝났다.
이후 후반전이 진행되었고, 경기는 더욱 과열되어 오무라 노리오가 이상윤을 깊은 태클로 저지하다가 이상윤이 오무라를 밀어 양 선수 모두 경고를 받았다.[1] 그 뒤 야마구치 모토히로가 고정운의 실수를 이용해 선제골을 득점하였고, 이후 후반 막바지에 이르러 이상윤과 교체되어 들어간 서정원이 최용수의 어시스트를 받아 동점골을 성공시켰다.[2] 그리고 3분 뒤 이민성이 중거리슛으로 역전골 득점에 성공하며 대한민국의 2-1 승리로 경기는 마무리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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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3전 3승으로 하루만에 다시 조 1위를 탈환하게 되었다. 일본은 중요한 홈 경기에서 승점을 추가하지 못하고 조 3위를 유지하였다.
대한민국은 1주일 후 2위 아랍에미리트와의 홈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승점 12점으로 승점 7점의 아랍에미리트와의 간격을 크게 벌려나갔다.
한편 일본은 이 경기에서 패배 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2연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2경기 모두 1-1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점 2점만을 추가하였고, 누적 승점 6점으로 3위를 유지하였다. 같은 기간 대한민국은 승점 4점을 추가, 누적 승점 13점이 되어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일본의 가모 슈 감독은 카자흐스탄과의 1-1 무승부 후 사임하게 되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부터는 코치였던 오카다 다케시가 감독대행으로 선임되어 팀을 이끌게 되었다.
오카다 다케시 감독대행 체제의 일본은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도 1-1 무승부, 아랍에미리트를 홈으로 불러들인 경기에서도 1-1 무승부를 기록한다. 조 2위와 3위였던 이 두 팀간의 무승부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2경기를 남겨두고 승점 16점인 상태에서 조 1위가 확정된다. 이 시점 아랍에미리트는 승점 8점, 일본은 7점으로 양팀 모두 2경기를 남겨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잔여 경기 전승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현재 승점인 16점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무승부로 일본은 아랍에미리트의 승점을 넘지 못하면서 자력 2위 가능성도 없어지며 플레이오프 진출조차도 불투명해졌다. 일본은 잔여 경기인 대한민국과의 원정 경기, 카자흐스탄과의 홈 경기를 앞두고 있었고, 아랍에미리트는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 대한민국과의 홈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잔여 2경기를 모두 승리한 후, 아랍에미리트가 잔여 경기 중 최소 1경기에서 무승부 이하의 결과를 거두어야 2위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일본은 1997년 11월 1일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1998 월드컵 진출이 확정된 대한민국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며 희망의 불씨를 살려나갔다. 한편 다음날 아랍에미리트는 우즈베키스탄과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점 9점이 되었고, 일본은 승점 10점으로 2위에 올라서며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대한민국은 남은 경기에서 일본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조 1위로 1998년 FIFA 월드컵 직행을 확정지었다. 일본은 한때 아랍에미리트에 승점이 밀리며 자력 2위가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황까지 몰렸지만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어냈다. 이후 일본은 A조 2위 이란과의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연장 승부 끝에 3-2 승리를 거두며 극적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 이는 일본의 사상 첫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이 되었고, 이는 일명 조호르바루의 환희로 불리는 일본 축구사 최고의 영광의 순간 중 하나가 되었다. 1994 월드컵 본선 진출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 순간의 실점으로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도하의 비극으로부터 4년 만에 이루어낸 기적적인 본선 진출이었다. 한편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일본에 패한 이란도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호주를 꺾고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 기타[편집]대한민국에서 이 경기는 MBC에서 생중계되어 56.9%의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며, 합동 중계가 아닌 단일 방송사 중계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3] 또한, 도쿄 대첩은 붉은악마가 결성된 이후 처음으로 가진 해외 원정 경기이다.[4] 일본에서는 NHK에서 중계방송하였고 이 영상은 국제 신호(IS)로 제작되어 대한민국의 MBC이 받아서 중계하였다. TBS에서도 중계방송하였는데, 일본 국내용으로 자체 제작하였으며 영상도 NHK와는 다른 자체 제작 영상으로 중계하였다. 같이 보기[편집]각주[편집]
참고[편집]외부 링크[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