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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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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李尙勳
출생1956년 10월 6일(1956-10-06)
Image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사망2025년 8월 25일(2025-08-25)(68세)
사인췌장암
성별남성
국적Image 대한민국
본관함평
학력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경력대법관
직업법조인

이상훈(李尙勳, 1956년 10월 6일 ~ 2025년 8월 25일)은 대한민국대법관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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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전라남도 광주시(現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정진하였다.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재학 중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사법연수원 제10기를 수료함으로써 법관의 길에 들어섰다. 그에게 있어 법조인의 길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평생을 관통하는 소명(召命)이었다.

법관으로서의 출발은 각급 법원의 평범한 판사직이었다. 그러나 그는 맡은 사건마다 치밀하고 엄정한 태도로 임하여 동료와 상급자의 신뢰를 얻었고, 대구·마산·광주·대전·서울 등지를 두루 거치며 사회 각계의 민사·형사 사건을 접하였다. 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늘 예리하였고, 법리를 다루는 손길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러한 성실한 자세는 1993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사법정책연구심의관,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맡으며 법원 내부의 정책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2006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로 부임하면서 그는 사법부의 핵심적 위치에 섰다. 당시 검찰 수사 중심의 관행이 여전히 강고하던 시절, 그는 법정 심리를 통한 실체적 진실 규명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공판 중심주의의 가치를 앞장서서 설파하였다. 제주지방법원장, 인천지방법원장을 거쳐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법원행정 전반을 이끌었고, 마침내 2011년 2월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까지 이어진 그의 대법관 시절은 원칙과 양심의 발현 그 자체였다.

그는 다수의견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할 때에는 고독한 소수의 자리를 택했다. 내란 사건, 정치자금 사건, 노동 사건 등 국가적으로 중대한 판결에서 그는 법의 본령을 굳건히 지키고자 소수의견을 내었으며, 이는 때로는 시대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재조명되며 그 빛을 발하였다. 그의 소수의견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사법부가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와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였다.

대법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평생 쌓아온 법리와 경험을 사회에 돌려주었고,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서 후학들에게 원칙과 사명의 무게를 가르쳤다. 그의 강의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법관이 갖추어야 할 양심과 자세를 일깨우는 울림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그에게 잔혹하였다. 2020년대 초반 췌장암이 발병하였고, 투병 끝에 2025년 8월 25일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별세 소식은 법조계와 사회 전반에 큰 충격과 애도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그를 두고 “끝내 원칙을 버리지 않은 법관”, “양심을 따라 살아간 사법부의 양심”이라 추모하였다.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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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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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6월 허위 경력을 기재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채인석 화성시장에게 벌금을 선고한 원심 파기환송
  • 2011년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인대 씨에게 무죄 선고
  • 2011년 12월 BBK 관련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 확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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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2월 23일 대법관 인사청문회 중, 2006년 11월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영장이 기각될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이던 이 후보자가 영장전담판사, 검찰 측 인사들과 사적으로 4인 회동을 한 것이 알려졌다.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6개월 만에 형질 변경되면서 10배가량의 시세 차익을 남기는 등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도 논란이 됐다.[1]
  • 2011년 12월 정봉주 전 의원 판결과 관련, 민주통합당은 “아직 비비케이(BBK) 관련 실체적 진실은 드러나지도 않았고 온갖 의혹은 현재진행형”이라며 “온전한 실체가 드러날 때까지 거짓과 위선과의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통합진보당도 논평을 내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과 비비케이(BBK)와의 연관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검찰 쪽은 진실의 규명보다는 이 대통령과 비비케이(BBK) 사이의 무관함을 증명하기에 바빴다”며 “심각한 정치 재판이고 실망스러운 판결 내용”이라고 주장했다.[2]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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