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복합시
도농복합시(都農複合市) 또는 도농통합시(都農統合市)란 대한민국에서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새로 형성된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이 통합된 형태의 시를 의미하며 법률상으로는 도농복합형태의 시라고 규정하고 있다. 도농복합시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기 이전부터 한반도에서는 도시와 농촌을 통합한 행정구역이 여러 차례 등장했었다.
1995년 광역시로 개편한 울산광역시,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의 경우에는 각각의 지자체인 군과 시가 통합된 형태이지만 여전히 군이 광역시의 하위지자체로 남아있으며[a] 세종특별자치시나 제주특별자치도처럼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없는 도농복합시도 있고, 창원시, 청주시 등 1995년 이후에 형성된 도농통합시도 있다.
역사
[편집]도입 경위
[편집]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시절 기존의 공동체를 해체하고 일본의 지방 제도를 조선지역에 도입하기 위해 행정 구역을 개편, 일본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정촌에 대응하는 행정 기관으로 부(府, 일본의 시에 해당), 읍(邑, 일본의 정에 해당), 면(面, 일본의 촌에 해당)이 설치되었다. 부는 1914년 4월 1일에, 읍면은 1931년 4월 1일에, 도는 1933년 4월 1일에 각각 법인격이 부여된 지방자치단체가 되어 지방 의회가 구성되었다. 이렇게 도를 광역자치단체로, 부읍면을 기초자치단체로하는 행정 체계가 완성되었는데, 반면 대한제국 시기까지 지방 제도의 기초단위였던 군은 법인격이 부여되지 않고, 역할도 축소되어 읍면의 사무를 감독하고 지원하는 행정 기관이 되었다. 다만 1921년에 군제폐지법을 공포, 1923년에 군회(군의회)가 폐지되고 1926년에 군장(군수), 군역소(군청)가 폐지되어 주소에나 쓰는 이름뿐인 존재가 된 일본의 군과는 달리 조선총독부는 군을 폐지하지는 않았다.
광복 이후 미군정은 지방 의회는 해산시켰으나 행정체계 자체는 그대로 활용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부를 시로 고친것 이외에는 종전의 제도가 유지되었다. 1952년에 지방선거를 시행하여 시읍면의회가 다시 구성되고, 1956년의 지방선거에서는 민선 시읍면장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 정변을 일으킨 군부세력은 지방의회를 해산시키고 민선 자치단체장을 해임, 지방자치를 정지시켰고 1961년 10월 1일에 시행된 「지방자치에관한임시조치법」에 따라 시군이 지방자치단체가 되었는데(물론 시장·군수는 관선이었고 시군의회는 구성되지 않았으므로 지방자치제는 사실상 폐지되었다),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군사정권은 단순히 읍면의 법인격과 재산, 사무, 권한 등을 군에 귀속시켰을 뿐 행정구역을 조정하지도 않았고, 읍의 인구가 5만 이상이 되면 시가 되어 군에서 분리되는 제도도 그대로 유지된 탓에 지방자치단체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읍이 시로 승격, 군에서 분리되어 남은 군의 행정 구역은 월경지·위요지 등 기형적인 행정 구역이 발생하고, 분리된 시는 도시화가 진행되어 계속 발전하는데 비해 농어촌인 군은 계속 낙후되어 주민의 생활권은 분리된 시에 종속되었으나 행정 구역이 다른 탓에 시와 군 사이에 지역감정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지방자치에관한임시조치법」에는 인구 10만 내외로 군을 재획정 한다는 조항이 있으나 실제로는 남양주군과 신안군이 신설되는 등 부분적인 개편이 있었을 뿐 전국적인 행정 구역 재획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후, 생활권과 행정 구역을 합치시키고 자치단체간에 협조하여 처리해야 할 상·하수도, 교통, 환경 등의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도시와 농어촌 간의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지방자치법을 개정, 시에도 읍면을 둘 수 있도록 하고, 1995년의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시와 군의 통합을 추진한다.